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2009-03-19 (목) 12:00:00
얼마 전에 어떤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가능하면 다 같이 함께 타자고 여러 사람이 타게 되었다. 좁은 엘리베이터에 기준 정원을 넘어 탔는데도 경고 신호가 울리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탔다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에 문은 닫히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에 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문이 닫히고 2초 동안 올라가다가 엘리베이터는 툭 아래로 내려앉고 말았다. 무거운 하중 때문에 올라가지 못하고 멈추어 섰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갇혀 있는 시간은 1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재미도 있으면서도 짧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에스컬레이터는 올라선 사람이 빨리 걸어 올라갈 수 있고 또 가만히 있을 수 있다. 시야도 넓어서 주위를 보면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앞사람의 뒷모습만 보아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구태여 뒤를 돌아 볼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쑥스러운 일이다. 그러니까 그냥 남의 뒷모습만 보게 된다. 나 혼자만 조심하고 그대로 서 있으면 된다. 하지만 사람이 앞모습을 보지 않고 뒷모습만 본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밀폐된 작은 공간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세계가 된다. 그 공간은 만남의 기회일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형편이라면 인사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야하는 목적지를 분명히 입력시켜야 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인생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리 저리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내가 할 일과 바라보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목표요 어떤 사람에게는 꿈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몇 층을 갈 지 몰라서 잘못 누를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는 내가 눌러야 움직인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냥 내가 그 움직임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된다. 어떤 점에서 기계를 이용하여 내가 편리를 얻는 것이지만 무엇인가 다른 의미를 준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얼마든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남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남의 도움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 밖에 있는 사람을 불러야 하고 밖에서 고쳐야 한다. 만일 어느 누구와 함께 그 안에 있다면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서로 같은 배를 탔기 때문이다. 같은 배에 물이 새면 그 물을 퍼내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그 배가 항구에 도착을 해야 한다. 설령 지금까지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환경에서 굳어진 사고의 구조라 할지라도 그 상황만큼은 하나의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공동의 운명체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은 엘리베이터다. 빨리 올라갈 수도 있지만 또한 내려 올 수 도 있다. 그렇다고 다시 안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단지 갈 때든지 내려 갈 때든지 내가 가야할 그 방향과 목적은 분명히 서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야고보서 1:9-11)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도 탈 수 있고 에스컬레이터도 탈 수 있다. 그 어떤 것을 타고 가든지 그 사람의 형편과 상황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인생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사람과 만나 함께 하고,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인생인가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