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신뢰’는 가정의 초석

2009-02-2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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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어느 가정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가 부강하려면 그 근간이 되는 구성원들의 정신적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상호간의 신뢰감, 즉 믿음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이와 관련해 좋은 내용의 설교를 들었다. 나라가 부유해 지려면 족식(足食), 족병(足兵), 신의(信
義)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공자의 말을 토대로 한 내용이다.

아무리 경제가 튼튼하고 국방력이 막강해도 나라와 백성 간에 신의가 없으면 나라가 부강하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정 내의 행복은 상호간의 바른 관계성에 있는 것이다. 풍부한 물질도 행복의 조건이 되긴 하지만 가정의 행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관계성, 즉 상호 신뢰성이다. 특히 가정에서는 배우자 간에 서로 믿어주고 사랑하는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으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다.


가정의 출발점이 되는 결혼은 성인 남녀 두 사람이 평생 함께 가야할 공동운명체의 삶을 약속하는 것이다. 부부는 서로의 역할에 대하여 상호 의논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부부간의 역할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기대가 바뀌기 마련이다. 물론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여성은 내조를 하고 남성은 가정부양자로서 직업에 종사한다는 기본적인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남녀평등, 가치관의 확산, 여성의 사회 진출 등의 이유로 부부간의 역할 분담이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부부의 역할을 남자의 일, 혹은 여자의 일이라고 딱 규정지어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사회·경제적 변화는 부부가 공동으로 가정의 일을 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악화되는 경제상황에 맞벌이 부부들이 실직이라는 청천 벽력같은 무거운 현실에 절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실직은 부부간 역할의 재조정을 요구한다. 만약 아내가 주 소득원이 될 경우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게 마련이다. 경제 위기 시 남편의 소득 상실은 곧 가정 내 필연적인 구조조정을 야기하여 여자가 담당하던 집안일을 남편이 맡게 되는 경우도 불가피 하다. 하지만 부부사이가 신뢰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혼란의 모습을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부부가 서로 사랑, 존경의 단단한 기초위에 있는 집은 남편이 장기간 실업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가족관계는 오히려 더 굳건해 지는 경우도 많다.

반면 가부장적인 가족 관계에서는 남편의 경제력이 상실되면서 아내의 남편에 대한 순종적 태도가 깨어지고 온 가족이 남편, 아버지의 권력을 더 이상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그러다 보면 가정의 평온이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세태 속에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처럼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결혼만 한다고 가정이 저절로 굴러가는 건 절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났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도 물론 아니다.

가정은 지속적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꾸준히 물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정성들여 가꿔야하는 사업이다. 사업파트너들 사이에 신뢰에 금이 가면 그 관계는 회복하기가 힘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가정의 주축인 부부간의 사랑은 어느 것 보다 강하고 질기다. 하지만 매우 여려서 한번 상처가 나면 평생 치유가 쉽지 않다. 남자들은 보통 외식 한번 하고 결혼기념일 날 선물 하나 사주는 걸로 치유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배우자 상호간에 신뢰의 예방접종은 평소 대화에서 시작된다.
가정의 구심점이 되는 부부를 가리켜 ‘더 나은 반쪽’이라고도 말한다. 가정 내 행복은 서로 존중하며 신뢰할 때 찾아온다.

작은 일에도 서로 믿는 마음이 싹틀 때 가정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가정의 행복을 파괴시킨다. 가정의 파괴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으며 무관심했던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전문 상담가의 견해를 들어보면, 가정이 깨지고 부부가 갈라서는 가장 큰 원인은 가정이 극복하기 힘든 어떤 고난이나 가정을 파괴시킬 만큼의 큰 일이 아니다. 예상외로 아주 사소하고 관심 밖의 지극히 작은 일이다. 몇일 전 퀸즈 베이브릿지 콘도에서 일어난 한 한인가정의 참극도 그 원인이 아주 작은 불씨가 큰 불길로 번져 일어난 것은 아닌지... 공자가 강조한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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