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피천득 선생과 문학인의 자세

2009-01-1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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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서울의 남산 기슭, 옛날에 안기부가 위치했던 자리에 한국 문학의 사랑방이고 문학전당인 ‘문학의 집’이 나무숲 사이로 보인다. 이곳에서 문인들은 문인 동우회 등 각종 모임을 하며, 일주일에 한번은 유명 문인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다. 그런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몇 년 전 우리나라 문학의 자존심인 피천득 선생님께서 이곳에서 하신 강의를 읽고 요약해 적어본다. 그의 강의는 글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공감이 가는,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이었다.
우리 문인들에게 문학이 매우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신적인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문학은 단지 선택된 생활 경험에서 금싸라기를 골라, 자기 느낌을 표현해서 적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생활의 마음자세 없이는 절대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우리는 가끔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을 보는데, 그것은 자신을 패배시키는 일이다.
제발 고답한 말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지 말고, 쉽게 쉽게 쓰는 글이 잘 쓰여진 글이다.
또한 문학인들은 자신들이 날 때부터 내면의 정감이나 감흥을 타고 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오산이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모두 노력에 의해서만 거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면에 있어야만 진정으로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문인은 특권 계급이나 잘사는 사람 편에 서서 글을 쓰면 절대 안 되며, 항상 고생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예술가는 허영심이 있다. 우습게도 있어도 대단히 많아서 자신의 글을 제일 잘 쓴 것으로 과신하고 착각한다. 마누라는 남의 마누라가 조금 좋아 보인다는데, 대부분의 문인들은 무조건 자기 글이 제일 잘 썼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좋은 글은 내가 입고 있는 옷처럼, 내가 봐도 좋고 또 남이 봐도 함께 좋아야 하는 것이다.
좋은 문학은 자기에게 충실한 문학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영원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 한 가지 예로 지금은 독립되어 나갔지만 영국이 전쟁으로 태양이 지지 않을 만큼 넓은 땅을 가지고 있던 때에 유명한 셰익스피어 이야기이다. 영국이 “인도는 내놓을지언정 셰익스피어는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한 말은 아직도 시대를 지나 잘 알려진 얘기이다.
문학은 세속적인 자존심을 버리고 굶더라도 불의(不義), 부정(不正)과는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문학을 하는 사람의 진정한 태도이다.
황진이의 시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며,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 이거던 굽이굽이 펴리라”, 김소월의 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여기 이 시처럼 쉬우면서도 서정성이 있으면 바로 좋은 시라고 하시면서 끝을 맺으셨다.
금아 피천득 선생님은 소탈하면서도 인연을 항상 소중히 생각하고 고맙게 생각 하셨다고 한다.
문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짧게나마 글을 써야할 경우도 생기며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생각을 말로 전달할 때에도 아름다운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있다면 자연히 아름다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글을 쓰듯 어려운 말을 쓰는 대신 쉽게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배려의 말을 쓰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처세술의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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