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2008-11-2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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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옥식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교통사고는 예측할 수가 없다. 예고 없이 일어나는 사고를 방지하는 길은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지켜야하는 운전자의 기본 의무이며 도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 나는 경찰의 감시를 피해 교통법규를 어기기도 하고, 경찰의 눈에 걸리지 않은 것을 대단히 운이 좋은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큰일을 당하고 보니 이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았음에도 무사했던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저께 저녁, LCD 컴퓨터 모니터가 눈을 보호한다기에 하나 장만해오다 교통사고를 냈다. 나 대신 운전을 했던 지훈이가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다가 맞은편에서 직진하던 차와 충돌했다. 직진 차는 주행 우선권을 과시라도 하듯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박진감 있게 내 차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순간 내 차는 팽이처럼 한 바퀴 돌아 길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마치 진주만 공격 때 일본 공군 격투기가 최소의 연료만 장착하고 적군을 향해 돌진하던 상황이 연상되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지각하고 911 구조대를 부르려고 전화기를 찾았으나 어디론가 튕겨 나가고 없었다. 안경도 벗겨지고 몸에 부착한 것은 모조리 튕겨나갔다. 아마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목도 차체를 뚫고 튕겨나갔거나 뇌진탕이라도 일으켰을 것이다. 안전벨트가 나의 목숨을 구한 생명줄이었다.
나는 삶은 감자처럼 으깨진 차를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앉아 있던 조수석을 부딪쳤더라면 아마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 천만다행으로 조수석을 비켜난 뒷좌석이 뭉개진 것을 보니 아찔하다. 아무래도 나는 억세게도 긴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다.
이동식 오피스라고도 불리는 내 차 안은 각종서류와 팜플렛,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들로 운전석을 제외하고는 빠끔한 구석이 없다. 상점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라 별 염려 없이 조수석에 쌓인 물건들을 옮겨 싣기가 귀찮아 지훈에게 운전석을 내어 준 것이다. 내 집에 기거하면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지훈이 학생은 내 컴퓨터 닥터이기도 하다.
사고가 잦은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1분만 더 기다렸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차 역시 주행 속도를 지켰거나 브레이크만 한 번 밟아 주었더라도 이와 같은 대형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교통사고는 먼 길을 갈 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는 나의 부주의로도 일어날 수 있지만 상대방의 부주의로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을 당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운전할 땐 항상 주의를 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때로 안전 불감증에 걸려있다.
보험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동차 값보다 수리비가 더 들어 폐차를 시켜야겠다고 한다. 그동안 잘 타고 다녔던 차를 폐차장으로 보내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차를 폐차시키도록 허가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해 사시사철 뛰고도 몸살 한 번 앓지 않던 녀석을 나의 부주의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늘도 슬픈지 차가운 가을비가 온종일 추적추적 내린다. 낙엽이 다 진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도 휙휙 지나간다. 차 번호판을 떼는데 마치 죽은 자식 화장터로 보내는 심정이다. 타고 다니던 소유물을 폐차장으로 보내는 마음도 이러한데, 하물며 자식이나 부모, 또는 친구, 가까운 이웃들을 교통사고로 잃거나 평생을 장애자로 살아야 하는 그 심정은 어떠할까.
죽음은 항상 내 곁에 머물다가 어느 날 예고 없이 들이닥칠 수 있음을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 새삼스럽게 또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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