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소상인들

2008-08-0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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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취재1부 부장대우)

“당장 밀린 외상 빚을 갚지 않으면 가게를 뺏어버리겠다는데 사채를 안쓸 수 있습니까?”

맨하탄에서 청과상을 운영하는 K씨는 “은행들은 신용대출은 커녕 예전보다 담보도 까다롭게 요구해 돈 빌리기가 불가능했다”며 “매상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는 데 앞으로 남은 부채는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탄했다.K씨 처럼 은행 등 제도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사채시장을 전전하는 한인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맨하탄에서 도매상을 운영하는 L사장도 최근 은행에 대출상담을 하러 갔다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은행이 요구하는 담보 등을 제공할 능력이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는 사람을 통해 사채를 융통해야 했다. 그는 “연리 30% 조건으로 15만달러를 어렵게 빌렸다”며 “그나마 보증인 없이 빌릴 수 있어 천만다행 이었다”고 말했다.

퀸즈에서 네일가게를 운영하는 P씨는 더욱 심각하다. 돈이 급하게 필요해 월이자 30%인 고리대금을 썼다가 빚 독촉을 피해 모 처로 몸을 숨긴 상태다. P씨는 “은행 거래만 할 수 있었어도 이 같은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채권자의 ‘빚독촉’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이라고 말했다.지난해부터 불거진 신용경색으로 은행 돈줄이 막히면서 자금난을 겪는 한인 자영업자들이 고리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고금리 사채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상환능력이 안돼 파탄 지경에 빠지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빚 독촉을 피해 야반도주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은 물론 하루아침에 아예 빈털터리로 사업체를 넘겨야 하거나 파산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한인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용이 낮거나 자산이 부족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제도권 금융 수혜를 받지 못하면서 은행 이자보다 10배 이상을 주며 사채를 쓰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이대로 가다간 한인 자영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대부분이 소상인인 자영업자들은 경기 침체로 이미 수년 째 ‘매상 폭락’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자금융통마저 원활하지 못해 고리사채로 연명해야 한다면 앞서 본 사례처럼 언제 어떻게 무너질 지 모를 일이다. 소상인 자영업자들을 위한 자금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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