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

2008-01-2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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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용 메릴랜드대학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곧 출범할 한국의 새로운 정부의 조직개편을 주된 임무로 하는 인수위원회는 과학기술부를 없애고 그 기능을 나누어 기초연구개발은 교육과학부가, 산업기술연구개발은 지식경제부가 맡는 형태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과학기술 인력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부서와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부서를 따로 따로 정한다는 것은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고 연구와 연구인력을 따로 따로 분리한다는 개념으로 파악된다. 한국의 대학과 연구기관 등 과학기술계는 과학과 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부서의 이러한 개편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와 함께 이를 재고할 것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는 소식이다. 과학기술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 주무부서의 개편은 산업기술로 연계되지 않는 기초 원천기술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신임 대통령 당선인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이 과학 기술의 발전에 달려있다는데 이의가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경제 발전으로 연결시키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과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꾸준한 노력과 지원과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 당장 산업기술로 전환될 수 없는 기초과학연구와 그러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학자 등 고급 연구인력의 개발은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산업체가 아닌 국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에는 물리나 화학, 수학 등 기초분야의 연구가 산업 생산은 말할 것도 없고 컨텐츠 산업, 서비스 산업, 의료, 금융, 국방, 환경, 문화, 예술, 우주 등 인간의 생활과 경제활동 모든 곳에 응용되고 있으며 인간의 상상력과 새로운 수요의 등장 등에 따라서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학문들이 융합되어 새로운 경제성장동력으로 발전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학의 연구실에서 창출된 새로운 기초과학 현상에 대한 발견과 이해에 대한 연구 결과가 학술지에 발표되면 어떠한 사람들이 그 결과를 읽고 어떻게 응용하여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활용될지 완전하게 미리 알아내기란 인간의 유한한 지적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화학, 물리, 생물 등 기초과학의 연구가 나노기술, 생명과학기술, 에너지, 컴퓨터, 전자, 정보, 우주항공 기술 등에 직접 응용되는 일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기초과학이 튼튼한 국가가 초첨단 과학기술과 산업생산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추세이다. 또한 기초과학자들과 응용과학기술자간의 간격도 점차 좁혀지고 서로 다른 전문분야의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하며 과학기술분야가 아닌 다른 경제성장동력에 지대한 기여를 하는 등 전체적인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응용의 패러다임이 전세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초과학연구의 결과가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응용되어 새로운 산업과학 기술로 발전할지 지금 당장 알아내어 기초 과학과 산업과학기술을 갈라내어 따로 따로 지원한다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생각된다. 가령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의 학과 성적만을 보고 어떤 어린이가 장래에 어떠한 인물로 자라날지 선별해서 교육시키고 기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좋은 교육을 받도록 지원하고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이들이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과학기술 연구 정책도 폭넓은 기반을 튼튼하게 조성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된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은 과학기술부가 중심이 되어 기초과학과 공학연구 육성을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왔고 실제로 그 결과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학술논문의 질과 양이 이제 세계적인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고, 전자, 자동차, 조선 등 다양한 산업기술 분야에서 세계 일류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기술이 폭넓게 증가하고 있음이 그 증거라 하겠다. 이와 함께 외국학계의 한국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도 매우 높아지고 있는 것이 공정한 관측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과학기술 국가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을 위하여 꾸준하고도 과감한 정부의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인수위가 결정한 과기부의 해체는 그동안 쌓여온 한국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기술 연구 개발의 성장 모멘텀에 브레이크를 가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높다는 점에서 현명한 정책적 결정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새 정부에서는 한국 과학기술계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고 그나마 가속도를 내기 시작한 한국의 기초 및 응용과학기술 연구를 더욱 지원하여 새로운 한국의 경제성장 동력을 다양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미래 지향적인 과학기술정책 및 지원 편제를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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