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칼럼/ 성경이 말하는 죽음

2007-10-0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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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인목사(뉴욕새소망교회)

죽음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죽은 자라고 표현하였다(마8:22·요5:25). 이는 영적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를 두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창세기 3장의 선악과 이야기에서 이 과일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하고 있다. 원어로 보면 먹자마자 즉시 죽으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도 살아 있었고 자식을 낳았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짓말하신 것일까? 당장 죽지는 않았으나 전과 같지 않았다. 어떤 변화가 있긴 했다. 그러면 전에는 살아 있었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달라진 것을 죽은 것이라고 표현한 것인가?


꽃병에 꽂아 놓은 뿌리가 없는 꽃은 살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것인가? 어떻게 보면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살아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일시적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나무 등치에서 잘려지는 순간 어쩌면 그 꽃가지는 죽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에게서 쫓겨나 분리되는 순간 이미 죽은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로 머지않아 죽을 인생이라는 말이다. 일시적인 생명은 있으나 반드시 죽게 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두고 안개와 같은 존재요, 풀의 꽃처럼 잠시 반짝 피었다가 사라지는 존재라고 말한다.

둘째로 인생은 죽음의 공포와 불안 속에 사로잡혀 사는 존재가 되었다.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나를 죽게 하지는 않을까, 내가 병에 들지는 않을까, 누가 나를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무슨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어떤 재난이 나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공포와 불안에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셋째로 인생은 죽음을 향해 사는 존재가 되었다. 하루를 살고 나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 것이다. 내가 좋은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곧 지나가 버릴 것이다. 내가 출세하고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모두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허무함 속에 살게 되고 절망에 갇혀서 사는 존재가 된다.

넷째로 인간은 홀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정이 있고 친척과 친구가 있다 하여도 그들이 참으로 내 존재의 일부분일수는 없다.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일지라도 그가 나와 하나일 수 없는 것은 삶 속에서 느끼는 일이다.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일지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자식에 둘러싸여 산다 할지라도 자신이 홀로임을 느끼게 된다. 친구 혹은 다른 여러 여건 속에서도 인간은 홀로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죽음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내 속의 고민을 대신할 수도 없다.

내가 홀로라는 것 중에 다른 하나는 나의 생은 나 혼자 책임진다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무거운 짐이며 피곤한 일이다. 방황하는 생활일 수 밖에 없다. 이 방황의 고통이 크고 피곤한 것이기에 창파에 떠 있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사막 길을 가는 인생이라고도 말한다. 인생은 늘 한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한다. 이 길로 가야할지 저 길로 가야 할지, 이것을 해야 할지 저것을 해야 할지,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슨 직업을 택해야 할지 등 인생은 늘 선
택을 고민하다가 사라져 가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생을 죽은 자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세상으로 쫓겨난 인생의 모습, 죽음 속에 사는 인생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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