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칼럼] 팬데믹- 그 상처가 남긴 말

2026-04-28 (화) 12:00:00 홍용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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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첵업 날이다. 간호사들 얼굴에서 마스크가 사라졌다. 코로나19 동안, 그 후에도 한동안 마스크는 병의원에서 더 오래 쓰였었다. 그 끔찍한 팬데믹! 거대한 회오리처럼 우리의 삶을 휩쓸고 지나간 어제가 살아온다.

흑사병이 유럽의 사회 계층 구조를 흔들었고, 스페인 독감이 일상의 문을 닫게 했듯, 코로나19 역시 수많은 생명을 앗으며 일상의 물길을 바꾸었다. 특히 취약한 이들에게 가혹했고, 누구도 원치 않았던 이별이 너무 많은 가정에 찾아왔다. 치료제가 없는 거리두기의 상황에서 인간은 응답 없는 기도에만 매달리지 않고 살 길을 찾아 나섰다. 인류 최대의 재앙이라는 이 전염병을 나는 LA에서 겪었다. 그 상처와 새 살, 두 얼굴을 동시에 본다.

다저스구장이다. 늘 푸른 환호성과 인파의 물결이 출렁이던 그곳이 방대한 예방의 현장이 되었다. 경기장 근처의 차량 정체는 뉴스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뉴욕의 어느 병원에서는 트럭 가득 검은 가방을 실어 하트섬의 구덩이에 던져 넣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를 보러 왔다가, 그 가방을 향해 울면서 작별하던 어느 딸의 통증이 내 차창 밖에도 어른거렸다. 나는 앞 유리 창 밖으로 왼 팔을 내밀어 백신을 맞고, 약의 부작용을 살피며 잠시 머물렀다. 그 작은 주사 한 방울은 누군가의 고통을 딛고 선 삶의 길 아닐까. 흑사병이 쓸고 간 뒤에도, 스페인 독감 이후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살기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 만남의 방식이 달라졌다.


가상현실이다. 우리는 클릭으로 만난다. 교실에서 마주 보던 얼굴들이 이제는 화면 속에서 미소짓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래 보지 못했던 글벗들의 웃음이 별빛처럼 환하다. 디지털, 사이버, 인공지능이라는 말들을 그동안 수없이 들었지만, 막상 그 링크를 타고보니 우주 여행을 하는 듯하다. 우리가 언제 헤어졌던가 싶을 만큼, 낯설지 않다. 그런데, 화면 속 얼굴들은 이상하리만큼 젊어 보인다. 굽은 길, 곧은 길을 돌아 줌 링크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듯한 친구들.

정말 두려운 것은 코로나19일까, 아니면 너일까, 그도 아니면 나일까.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증상이 없어도 보균자일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도 다시 연결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고, 이북(E Book)을 말하고, 출판을 논하며 뉴 노멀 일상의 문을 열었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디지털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신체적 격리 속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만난다. 아날로그의 감성을 품은 채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파도를 타는 세대. 그 물결 위에서 손을 내민다.

흑사병이 인간을 자성으로 이끌었고, 스페인 독감이 공중보건을 세웠다면,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디지털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확장시켰다. 팬데믹의 상처는 깊지만, 슬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자리, 상처 위에 돋아나는 새 살갗, 이곳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바탕이다.

오늘의 눈물을 내일의 웃음으로 - 그것은 팬데믹의 뜻없는 전언일까.

<홍용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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