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초장에 맑은 물이 흐르고 나무숲이 우거진 비비안 크릭은 휴식하기에 좋은 곳이다.
남가주 최고봉 샌골고니오를 배경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설암 산악회원들.
돌무더기 가득한 정상엔 성조기 펄럭
플러머 메도우스 초장은‘초록의 카펫’
물 모자라 수프·햇반 함께넣고 끓여
새벽 5시반 기상, 조반은 행동식으로
물걱정 없어 샌골고니오 등 두곳 올라
포시 크릭(Forsee Creek)과 갈라지는 지점에서 점심을 하고 주위를 보니 청명한 하늘에 굵은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조용한 산속인데도 햇살이 강렬히 비치고 있어 온도가 제법 높다.
매우 드라이한 기후에 9개 봉우리를 일일이 답사하는 과정에 의외로 물 섭취량이 많다. 다음에 만난 실드 픽(Shield peak)은 다른 곳과 판이 하게 봉우리 전체가 돌무더기다. 픽에서 바라본 광경은 사방으로 맑고 청명한 느낌으로 모두들 감탄을 한다. 다음에 만난 알토 디아블로 픽(Alto Diablo Peak)은 산행로 바로 옆에 있어 거의 거저먹듯이 올라갔다.
물이 있다고 보고가 된 하이 메도우 스프링(High Meadow Spring)에 도착하여 본인과 박경학 회원이 정수기를 들고 찾아 나섰다. 물길이 있을 만한 초장을 찾으려 했으나 보이질 않는다. 둘이 방향을 나눠서 찾기로 했다. 언덕 아래로 계속 내려가 봤으나 큰 소나무들만 가득하고 샘이 있을 만한 수풀이 보이질 않는다. 포기하고 올라오는데 아래편 박경학 회원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물길을 찾은 모양이다. 위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잔 황, 강희광 회원과 함께 내려가니 샌골고니오(San Gorgonio)에 이런 초장이 있었나 할 정도로 아름다운 풀밭이 나타났다. 플러머 메도우스(Plummer Meadows)로 알려진 이곳은 초록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 풀 속에서 물을 머금은 진흙의 촉감이 등산화를 통해 전해온다. 약수처럼 누군가 물을 그냥 받아 마신듯 나무로 갈때기를 만들어 놓았다. 박경학 회원은 자신의 물통에 물을 그냥 받아 올라 갔으나 왠지 꺼림칙해서 정수를 하여 물을 받았다.
달러 레익 새들(Dollar Lake Saddle)을 지나서는 오늘 야영지인 드라이 레익 뷰(Dry Lake View)까지 2마일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등정할 픽이 3개나 남아 있다. 박경학, 올리브 회원은 픽 정복에 매우 적극적이다. 가장 연장자이신 강희광 회원도 절대 반대하지 않으신다. 한 개라도 빼 먹으면 다음에 그 픽을 하기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생각하니 끔찍해서라도 지금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찰턴 픽(Charlton Peak)은 생각 외로 힘이 든다. 올라가는 길이 없어 경사 45도의 흙, 바위위로 그냥 치고 오른다. 약 30분을 헉헉대고 난 뒤에 정상 표식(탄환통)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입맛대로 사진을 찍고 내려온다. 리틀 찰턴 픽은 야영지 바로 옆에 있어 짐을 풀어놓고 올랐다. 정상에 서니 멀리만 보이던 샌골고니오 봉이 바로 코앞에 와있다.
계획대로라면 이곳 야영장에서 비비안 크릭(Vivian Creek)으로 올라온 1박2일 팀을 만나야 하는데 워키토키로 연락이 안 된다. 할 수 없이 저녁 먹을거리를 살펴보니 햇반, 컵라면, 누룽지 보울 등이 있는데 물이 부족하다. 내일을 위해 각자 1통을 남겨두고 물을 모으니 정말 조금 밖에 없다. 할 수 없이 큰 냄비에 수프와 햇반을 넣고 끓여 나눠 먹었다. 설거지는 할 수 없어 그냥 모아 두었다가 내일 하산하는 길에 하이 크릭(High Creek)에서 하기로 했다.
텐트는 드라이 레익과 샌골고니오 봉이 보이는 능선 최고 명당에 설치하였다. 오늘 일정이 예상외로 피곤하여 7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산중턱에 걸려 있는 햇살이 아직은 질 때가 안 된 듯 텐트위로 환하게 비추고 있다.
다음날(7월4일) 아침 5시30분에 기상. 아침은 행동식(Power bar, Trail mix)으로 하고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 쪽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 자세히 보니 김영환 원정총무였다. 어제 저녁 합류하기로 했었으나 조금 지체되어 하이 크릭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2시 출발하여 올라왔단다. 우리 6명에게 물 1병씩을 안겨주고 맨 앞장서서 정상으로 향한다. 사업상 여러 날을 할애할 수 없지만 잠시 짬을 내어 달려와 준 김영환 총무 덕분에 물 걱정 없이 가장 높은 2개 봉우리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정복한 샌골고니오 피크에 올라 포즈를 취한 설암 산악회원들.
젭슨 픽(Jepson Peak 11,205)를 마친 후 샌골고니오 픽(11,502)에 도착하니 정상 레지스터 위에 성조기가 꽂혀 있었다. 오늘은 독립기념일, 누군가 미리 준비해둔 것 같았다. 돌무더기만 가득한 정상이지만 남가주 최고봉이란 프리미엄이 있어 쉽게 떠날 줄 모르고 사진도 여러장 찍고 경치도 즐겼다. 잠시후 그 많은 산행경력중 고소증으로 이곳을 오늘 처음 등정하게 되는 한후은 부회장이 씩씩하게 올라오자 모두들 축하를 해준다.
오전 9시에 하산을 시작했다. 주차장까지 약 8마일, 중간에 물길이 있고 오늘 올라오는 회원들도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약 1시간 내려왔을까? 앞에서 열심히 올라오는 임상기, 박신희 회원을 만났다. 정상까지 오를 것인가를 물어보니 우리와 같이 내려가겠다고 한다. 박신희 회원에게는 비비안 크릭 트레일이 심심하면 올라오는 곳이어서 별 감흥이 없지만 산악회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막 산행 맛을 들인 임상기 회원은 못내 아쉬운 눈치다.
더구나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전혀 예상치 않았던 장경숙 회원이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벤추라에 집이 있어 주말 산행에도 못 나오지만 이번은 JMT 연습을 위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다고 한다. 새벽 6시30분에 주차장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3시간30분 정도에 하이 크릭을 지나 올라왔으니 체력이 대단하시다. 장회원은 오후 1시까지만 오르고 내려오겠다고 하면서 길을 재촉한다. 일단 내려오기로 마음먹은 임상기 회원이 장 회원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같이 정상을 했을걸! 하면서 더욱 아쉬워한다.
하이 크릭에 오니 시원한 약수가 흘러내린다. 가물어서인지 수량이 풍부하진 않으나 쓰기엔 부족함이 없다. 오랜만에 임헌성 회원도 와 계시고 총 12명이 부지런히 끓이고 씻고 하여 점심을 거창하게 준비했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 하산을 시작했다.
비비안 크릭은 언제나 보아도 훌륭한 등산로이다. 산세도 좋거니와 청량한 공기가 감도는 소나무 숲이 일품이다. 샌 버나디노 산맥에서 가장 수량이 풍부하고 수목이 화사한 곳으로 통 굵은 시더와 파인이 쭉쭉 뻗은 사이로 오솔길처럼 아름다운 길이 나있는 곳이다.
당일 산행으로 방문했을 때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 늦게 내려옴으로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곳이었으나 오늘은 밝은 대낮에 지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 한인 몇 분이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오후를 즐기고 계신다. 주차장에서 약 2시간 거리인데 경사가 만만치 않아 올라오기에 매우 고생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법. 시원한 물줄기와 아름다운 수목을 즐기는 대가로 땀을 흘려야 하나보다.
경사진 내리막길은 발바닥과 무릎관절에 더 큰 하중을 받게 한다. 서서히 저려오는 무릎,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산행은 끝났으나 편안하기를 거부하는 설암 산악인들은 며칠 후 기억에 남을 또 다른 산행을 그리면서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