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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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주 나바호 원주민을 찾아서 <2·끝>

2007-07-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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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광야에 울려퍼진 하나님 찬양

방대한 지역 흩어져 살아 어린이 모으기 차질
마지막날엔 모뉴먼트 밸리까지 원정나가 픽업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지대의 광야 한가운데… 아스팔트길도 끝나고 겨우 차 한대가 다닐 만한 길을 따라 먼지를 풀풀 날리며 가다보니 덩그마니 하얀 건물 하나가 보인다. 예배당 건물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작은 예배당과 부엌시설이 있는 건물이 있는데, 우리 일행은 그 곳에 텐트를 쳤다. 물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 여기 어디에 인디언들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른 풀과 흙먼지 날리는 뻘건 흙 땅, 그리고 돌산들 밖에는 없다.
“당신들의 신은 우리의 신이 아니다. 당신들의 신은 당신들만을 사랑하고 우리는 미워한다. 그 신은 강한 두 팔로 얼굴 흰 사람들을 사랑스럽게 감싸 안으며 마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인도하듯 그들을 인도한다. 하지만 얼굴 붉은 자식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로 한 것 같다.”
이 글은 수콰미시족과 두와미시족(둘 다 강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추장이었던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의 일부이다. 이 연설문은 1854년, 원주민들을 보호구역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할 때 행해진 것으로 시애틀 추장의 절친한 백인 친구에 의해 기록, 보관되었다가 30년 후 ‘시애틀 선데이 스타’ 지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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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성경학교에서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연설문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문명인임을 자랑하는 백인들의 위선에 찬 삶과 공허한 정신에 대한 시애틀 추장의 지적은 시적이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것들이다. 자신들의 세계가 무너져가고 생명의 근원인 대지가 여지없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는 인디언들의 슬픔과 지혜, 그러나 비굴하지 않은 당당함이 연설문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하다. 자연을 사랑하고 대지를 거의 신격화 하는 인디언 부족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이 섬기던 하나님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감정이 많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시애틀 추장은 죽어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지키려 애썼던 수콰미시족의 땅에 묻혔고, 그의 묘지 건너편에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그의 이름이 붙여진 거대한 시애틀 시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얼마 후 시애틀 시에는 인디언이 거주할 수 없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아스팔트길이 꺾어지는 지점에 표지판이 하나 있고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Faith Covenant Church of God이라는 교회 표지판이 서 있다. 출발부터 꼬박 20여 시간이 흘렀다.
유타주 나바호 원주민 지역은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따라서 현지 상황의 정보 입수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었다. 특히 선교의 주된 목적이 어린이 여름성경학교였기 때문에 학생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아이들이 제 발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 집 한 집을 방문해서 부모의 허락을 받고 데리고 와야 하며 또 끝난 뒤에는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매일 해야 하기 때문에 인디언 선교사역에서는 픽업 팀의 활약이 대단한 몫을 차지한다.
이번 선교지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은 주민들이 모두 멀리 그리고 방대하게 흩어져서 산다는 점이었다. 가장 가까운 지역이 15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었으며 심지어는 40마일 밖까지 운전을 해야만 학생들을 데리고 올 수가 있었다. VBS는 3일 동안 낮과 저녁 두 번씩 계획되어 있었는데 학생들이 대부분 집에 없었고 서머스쿨에 나가는 아이들이 많아서 낮 시간의 VBS에 많은 차질이 빚어졌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첫 날에는 30~40명의 학생들을 데려왔고 마지막 날에는 90여명이 우리 자녀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그 삭막한 광야를 찬양으로 촉촉하게 적시었다.
첫날 아이들을 픽업하러 간 곳은 ‘하치다’라는 마을로 그래도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다. 그 곳에는 약 8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고 학교도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10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라고 한다.
하치다 마을은 보호구역에 속하지만 그 오른쪽에 Mexican Hat 이라는 마을은 보호구역이 아니라고 한다. 그 곳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이들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따라나서서 우리는 큰 기대를 갖고 SUV가 아닌 대형 버스로 출발했다. 아이들이 있을 것 같은 집들을 노크했지만 대부분 퇴짜(?) 맞았다. 동네를 돌면서 보니 역시 고장 난 폐차들이 집집마다 늘어서 있고 빨랫줄에 빨래를 집어놓은 모습도 보인다. 한 집에 성조기가 다소곳하게 꽂혀 있는 모습이 문득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왜 일까?
결국 우리는 그 곳에서 겨우 두 학생만을 태웠다. 리나의 안내로 Mexican Hat마을로 들어섰다. 샌후안 강이 시퍼렇게 흐르고 있는 곳. 바로 저 강이 콜로라도부터 내려오는 물줄기로 이 곳 캘리포니아로 연결되는 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길 하나를 두고 지천에 있는 물이 보호구역 원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물론 현재 하치다 마을에는 물과 전기가 들어가 있다. 더글러스 메사에 있는 교회 목사님은 현재 정부와 계속 타진을 하면서 조만간 이 지역에도 물과 전기를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이 지역은 길 조차도 포장도로가 아니다).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어 픽업을 하는 중, 셋째 날에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따라가 보았다. ‘모뉴먼트 밸리’ 지역이다. 관광지가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번화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뉴먼트 밸리는 그랜드 캐년과 함께 노아의 홍수 이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대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수억년… 아니 얼마만큼의 세월에 걸쳐 이 돌산들의 지층이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지층이 땅 표면에서부터 모두 같은 높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곳이 물로 덮였던 곳임을 증명해 준다. 돌들은 만져보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하다. 그리고 아래쪽에 지층이 있는 돌산들은 마치 흙더미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것들이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롭기만 하다.
바람만 좀 세게 불어도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흙더미 같은데… 저 무거운 돌산들을 거뜬히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을 픽업해야 하는 곳은 모뉴먼트 밸리에서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 번화가(?)를 벗어나 다시 흙먼지 이는 길을 따라 몇몇 아이들을 차에 실었다.
선교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VBS. 아이들이 팔딱팔딱 뛰고 찬양을 하는 통에 먼지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피냐타를 터트리고 캔디를 집기 위해 와락 덤벼드는 아이들… 캔디를 집기 위한 경쟁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대범함을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영락없이 발휘하였다.

글·사진 안진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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