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장은 각 주마다 특색이 있고 볼거리들이 다르지만 지켜야하는 예의범절은 어디나 똑같이 적용 된다.
콰이엇 타임 안지켜
술마시고 소리질러
먹던음식 마저 방치
항의하자 면박까지
70년대 중반 유학생의 부인으로 시작한 미국생활이 벌써 31년째가 되어간다. 세 자녀를 키우며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100달러를 주면 몇분 내에 다 써버리겠지만 지금 100달러를 투자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면 아이들의 삶에 큰 여유로움이 될 것이다”라는 남편의 생각에 그 당시에는 조금 부담스런 상황이었으나 기회가 되는 대로 볼 팍(ball park)이나 미식축구장, 남북 격전지 등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기억될만한 곳을 찾아 200여군데의 캠핑장과 여행지를 다닐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도 직접 가보지 못하고 책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미국 역사를 현지에서 찍은 빛바랜 사진들과 수집해놓은 자료들로 인하여 과제물을 완성할 수 있었고 친구들의 부러움과 선생님의 칭찬 속에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유로웠던 삶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주말 캠프장에서 겪었던 사건 때문이다.
캠프장은 각 주마다 특색이 있고 각 지역마다 볼거리들이 다르지만 지켜야하는 예의범절은 어디나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미국생활에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법질서를 지키고 타인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않는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여행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중가주에 사는 시누이로부터 이메일로 아빌라 핫 스프링스(Avila Hot Springs)에 대해 듣고 목요일에 올라갔다. 그런데 캠프 사이트가 일반적인 것보다 너무 작고 프리웨이에서 들리는 소음 때문에 망설여졌으나 텐트 사이트가 모두 비어있어 캐빈에 유숙하자는 남편의 제의도 있었지만 그냥 텐트를 치기로 했다.
금요일 아침 온천욕을 마치고 몬트레이로 올라가 모처럼 만난 시누님과 환담을 나누고 식사 대접을 받은 후 카멜 밸리를 거쳐 캠프장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석양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캠핑을 가면 텐트를 베이스캠프 삼아 반경 50마일 내에 있는 곳을 드라이브 하며 새 길도 찾아보고 하이킹도 하고 낚시도 하며 그곳 주위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볼거리, 놀거리를 즐기는 편이다.
캠프장에 돌아오니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하였으며 특유의 갈비 굽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비어있던 바로 옆자리에도 한 가족이 들어왔는데 한국말을 하는 것으로 같은 동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준비해온 텐트가 너무 커서 캠프 사이트를 모두 덮는 바람에 테이블도 옮기고 부산스럽게 짐을 옮기고 하는 것을 지켜보며 텐트 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문제는 어느 캠프 사이트에서나 적용되는 콰이엇 타임(quiet time)에 있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옆에서 수면을 취하고 휴식할 수 있도록 차의 이동이나 모든 음악, 소란스러움을 자제하는 것이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규칙은 캠프장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입구에 붙어있기도 하고 사용비를 낼 때 캠프 사이트 지도와 함께 준다.
그런데 옆 사이트의 한인들은 이 규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바비큐 시설도 없는 곳에서 돌무덤을 쌓아 파이어 플레이스로 만들어 놓고는 집에서 가져온 폐목을 태우며 고기를 구웠다. 고기 굽다가 튀어나오는 못으로 인하여 놀라 소리 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되었고 어른들은 주위의 분위기에 상관없이 술을 마시며 모처럼의 환담을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그 사이에 무료해진 아이들은 자동차 경적(safe key button)을 장난삼아 누르기 시작하여 시도 때도 없이 경적소리가 울렸고, 또한 차속에서 켜놓은 라디오에서 음악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참고 참고 인내하다가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11시30분이 넘은 시간에 텐트를 나가 조용히 조심스런 마음으로 “캠핑을 자주 안 오시나봐요. 캠프 사이트에는 룰이 있거든요…” 하며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이며 “같은 한국 사람이 이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면서 “너는 여태껏 텐트에서 코 골며 자고 나온 주제에 아이들이 모처럼 활기차게 놀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며 도전적으로 나오는 아이 엄마 옆에서 한 술 더 떠 본격적으로 시끄럽게 놀아보자는 술 취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연실색하였다.
“코 고는 것은 옆 텐트에서 나오는 소리이며 같은 한국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 캠프장에서 콰이엇 타임을 방해하면 누구나 부담없이 전화하라는 안내문을 보지 못 했느냐”고 질문하자 “가서 전화를 하던지 경찰을 부르던지 맘대로 하라”는 어이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로 전화를 할까, 아까 한국말로 한국사람인 것을 알게 하지 않았으면 영어로 항의하고 상황을 빨리 종료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 속에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에서 과한 행동을 멈추겠지 하는 마음으로 온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소음도 문제였지만 대낮보다 더 환하게 켜놓은 램프(그것도 2개씩이나) 불빛과 계속 타오르는 장작불빛, 나무 타는 소리가 밤 12시 넘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테이블 위엔 마시고 던진 찌그러진 맥주 캔들, 술병들, 안주 삼아 먹은 음식들이 그릇마다 담긴 채로, 종이 접시 위에 올려진 밑둥만 잘린 김치까지 적나라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어 어이가 없었다.
캠프장 인근에는 크고 작은 동물들이 많이 있어 냄새를 맡고 와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텐트에 들어가기 전 냄새 나는 음식물은 철저히 관리하고 쓰레기도 정해진 장소에 꼭 버려야 하며 텐트 속보다는 차 트렁크에 넣어두기를 권한다.
특히 불은 물을 끼얹어 완전히 불씨가 죽은 것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어느 곳에서나 꼭 지켜야할 캠퍼의 행동지침이다. 그날은 산불 주의보가 내려진 날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감스런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캠프 사이트에는 2개의 텐트를 칠 수 있으며 인원은 8명까지 허용된다.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가족이라는 명분 때문에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럴 경우 그룹 캠프 사이트를 예약하면 경제적 부담은 조금 더 되겠지만 미국에 살면서 배우는 태도가 되지 않을까.
내 집 뒷마당에서 파티를 열어도 이웃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심지어는 편지로 사실을 알리며 10시 이후에는 소음이 담을 넘지 않게 하려는 남을 위한 배려가 행동화된 이곳에 살면서 어느 장소, 어느 때에 만나도 반가운 동포이기를, 서로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외면하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