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생의 문
2007-06-18 (월) 12:00:00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각자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겠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서 꼭 같은 대답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허무주의 철학자 쇼펜하워는 “삶이란 불행의 연속이다. 인생이란 욕망이 충족되지 못할 때 오는 불만과 그것이 충족되었을 때 오는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인생은 정말 그런 것일까?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본인도 한때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생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심히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신자라면 인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을 논했지만 적어도 본인이 알기에는 유일하게 성경에서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인생은 그 출생부터 죽음까지 걸어야 되는 자기만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인생의 도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의미심장한 유행가도 있는데 이 짧은 나그네 인생길에는 통과해야 하는 문이 참 많이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도 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선택이 가능한 것들인데, 이 선택들이 인생의 행로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중국과의 정상회담 시 부시 대통령이 북경에서 연설을 마치고 사용되지 않는 잠긴 문을 열고 나오려다 문이 안 열려 당황하며 겸연쩍게 돌아서는 사진을 신문지상에서 보았다. 이 사건은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인 하나의 에피소드지만 만일 인생길에서 결정적으로 잘못된 문을 선택한다면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인생의 문은 이 세상에 출생할 때 나오는 어머니의 자궁의 문을 시작으로, 학교의 문, 직장의 문, 결혼의 문, 신앙의 문, 그리고 영원(永遠)의 문 등 여러 문들이 있다. 인생길의 치열한 경쟁과 아픔, 고민과 갈등은 많은 경우 이 문들의 선택에 직접 관련되어 있다. 본인이 자랄 때 살던 집은 대문이 아주 큰집이라 ‘큰대문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한 크고 화려하며, 인정과 박수갈채를 받는 편하고 매력적인 문을 선호한다. 그런데 예수만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생명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비록 겉으로는 초라해 보이고, 때로는 핍박과 고난이 따르지만 끝내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검투사라는 영화의 끝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주인공 맥시머스 장군이 원형 경기장에서 죽고 그 영혼이 육신을 떠난 후,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곳에 서서 미소 지으며 손짓하는 부인에게로 문을 열고 나아가는 장면이다. 아마도 천국의 모습을 그린 것 같다. 깜깜한 엄마의 자궁 속에서 이 광대한 세상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태아가 때가되면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의 품에 안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영원의 문으로 옮겨갈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한다. 심판을 거쳐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생명의 문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짐짓 그 문을 거부하고 어두움의 문을 택하는 사람들을 대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생에서 과연 이보다 더 중요한 선택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