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의 역사와 관행
2007-06-11 (월) 12:00:00
나로서야 가장 소중한 독자일 수밖에 없는 내 아내는 신문, 특히 정치기사에 무관심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2, 3년이 지나도록 그의 이름이 ‘무현’인지, ‘무환’인지를 구별 못했을 지경이다. 그런 아내가 며칠 전 ABC 뉴스를 채소밭에 물 주러 들락날락 하면서 잠깐 듣다가 G-8 정상회담에서 푸틴이 부시와 따로 만났다는 보도를 듣고는 그에 대해 한번 써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G-8 회담이라든지,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20세기 후반의 냉전 수준은 아니더라도 악화되었다는 보도의 배경을 잘 모르니까 그에 대한 시사해설을 쓰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중심이 되고 부시 대통령도 꼭 통과되어야 한다고 했던 포괄적인 이민법 개정이 예상과는 달리 7일 밤 상원에서 사산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주 칼럼이 제목대로 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론을 따지자면 사실 미국 상원은 극히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몰론 미국 건국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참정권 자체가 흑인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여자들에게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선거가 민주주의의 모형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하원의 경우는 직접선거였고 인구에 비례했기 때문에 참정권이 있었던 백인 남자들로서는 1인1표였다. 그러나 상원은 달랐다. 합중국 13개 주의 상원의원 수는 주의 인구에 관계없이 한 주에 2명씩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원의원 선거는 주 의회에서 뽑는 간접선거였다. 물론 현재는 상원의원을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그러나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주도 캘리포니아의 몇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델라웨어나 로드 아일랜드 주와 마찬가지로 상원의원 둘 만을 배출할 수 있다는데 상원의 태생적 ‘귀족원’ 성격이 있다. 애당초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표변될 수 있는 민의에 대해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하원에 대한 견제로서 민의에 구애되지 않고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할 수 있는, 그래서 임기에 있어서도 하원의원보다 세 배가 되게 상원 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하원과 상원의 관행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원 의장은 물론 하원의 다수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선출된다. 상원 의장은 부통령이고 임시 의장은 최고령자가 된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정족수의 과반수면 되지만 의사진행발언(filibuster)을 허용하는 면에 있어서 하원과 상원이 다르기 때문에 하원에서 통과되는 법이 상원에서 막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상원의원이 어떤 법안에 대해 반대를 한다면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법 자체에 대한 연설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전집을 가지고 나와서 외워대도 막을 수 없다. 그런 장광설을 막을 수 있는 표결에 있어서는 과반수(50)만 필요한 게 아니라 초과반수(super majority: 60표)가 필요하다. 흑인들의 민권과 투표권이 1960년대 중반까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던 역사 뒤에는 남부 출신 상원의원들의 의사진행방해 장광설 관행이 있었다.
이번 이민법 개정에 있어서도 상원의원들의 의사진행 토의를 제한하는 문제에 대한 여러 차례의 투표가 있었다. 현재 상원 소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1,200만의 불법체류자들을 합법화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보수 지지층을 의식해서 여러 가지 개정안들을 제안하고 토의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민주당의 움직임에 대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에 심야회의가 계속되다가 이민법 개정안 자체의 투표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이민법 개정의 내용은 다음번에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