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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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기 <8>

2007-05-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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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산행과 사파리 체험 15일

흥미진진한 ‘게임 뷰잉’
‘찍고 또 찍고’필름 동나

세렝게티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부터 게임 뷰잉이 시작됐다. 호텔을 벗어나 길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사자 떼가 길거리에 앉아 있었다. 수컷은 없고 모두 암컷인데 더러는 목에 칼러를 했다. 동물보호협회에서 생태계를 연구하고자 마취 총을 쏜 후에 목에 채운 것이라 했다. 컴퓨터 칩이 들어있어서 추적이 가능하다고 한다.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실컷 찍었다. 어제는 대체로 게임 뷰잉의 수확이 없다가 호텔에 돌아오기 직전에 ‘치타’를 찾았다. 멀리 보이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사진에 도저히 담을 수가 없었다. 망원렌즈 없이 사파리를 할 것이 못 된다고 실감한 날이었다. 서 선생님은 캐논 EOS 5D에다가 28-300의 좋은 렌즈를 가져오셨으므로 대표로 모두 찍으셨을 게다.
아침의 찬 공기가 대지를 누르고 모든 풀들이 살아오르듯 싱싱하다. 의연히 앉아있던 사자들이 서서히 일어나더니 멀리 지평선을 응시하면서 조금씩 옮겨간다. 사냥을 시작하는 것이다.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다른 곳도 보아야 했다.
갖가지 새들과 히포들을 보고서는 아침 먹으러 들어왔다. 아침식사 후에 나간 두 번째 게임 뷰잉은 별로 성과가 없었는데도 아침 일찍 본 사자들 때문에 마음이 흡족했다. 게임 뷰잉 동안 뒤집어 쓴 흙먼지를 씻고 싶어서 방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클리닝’을 내다 걸고 청소하고 있었다. 그 후 우리가 들어갔을 때 놀라운 것은 수돗물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자가 발전을 돌려서 물탱크에 채운 물이 금방 떨어지므로 낮에는 전체 스위치를 잠근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청소했을까?
늦은 오후에 세번째 게임 뷰잉을 나갔다. 수많은 가이더들이 랜드로버를 운전하며 서로 무전을 교신하면서 정보를 교환한다. 차가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면 영락없이 무언가가 있다. 새로운 창조물을 만날 때마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디지털 카메라에 여분의 배터리와 충전기까지 있는 우리는 마음껏 셔터를 눌렀다. 내 남편은 시큰둥하게 다리 뻗고 앉아서는 꼼짝을 않는다. 필름 사진을 고집하던 그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분량의 필름을 가져왔는데 어저께 모두 동이났다. 혹시나 하고 호텔 매점에 갔더니 24장짜리 필름 한통에 10달러 달라고 해서 포기했단다.
무릎 밑에 무언가가 있어서 양말 속까지도 꾹꾹 물어버린다. 견딜 수 없어서 쳐다보니 커다란 파리가 있었다. 체체파리라 했다. 브로셔를 둘둘 말아서 치니 떨어져 죽었다. 손이 없는 코끼리나 다른 맹수들은 어떻게 이 독한 체체파리와 싸워갈지 궁금하다.
우리 차는 또 한 번 진흙에 빠졌다. 이번에는 모든 동료 가이더들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맨발로 진흙창에 들어가더니 함께 돌을 나르고 도와서 금방 해결해서 나올 수 있었다. 여기서 지체한 것이 행운을 만들어서 레오파드(표범) 관찰의 영광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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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한마리가 뒷다리와 궁둥이 조금 남아있는 얼룩말 사체를 옆에 끼고 앉아있다가 하이에나들이 침을 흘리며 조여오자 벌떡 일어나서 큰소리로 포효하고 있다.

숨죽이고 서있는 차들 옆에 제리가 우리차도 세웠다. 7-8피트 앞에서 게으름 피던 표범이 방향을 돌려 우리 앞으로 오더니 바로 차 옆으로 지나간다. 얼굴과 손을 내밀고 사진을 찍으려하는데 표범이 갑자기 서서 나를 쳐다보지 않는가. 간 떨어지게 놀라버린 나는 그 순간을 놓치고는 결국 멀리 걸어가는 뒤꽁무니만 찍을 수 있었다.
성공적인 게임 뷰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상쾌했다. 차가 달리면서 만드는 먼지를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연 채로 자연을 즐긴다. 황금빛으로 바뀌는 노을 속에 새빨간 태양이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정말 아름다웠다.
제리는 다음날 우리를 말코피로 인도했다. 끝없는 평원인 세렝게티를 떠나면서 들른 곳인데 동물들의 대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망원경을 이곳저곳 들이대고 살펴보더니 평원을 가로질러 갔다. 그가 차를 세워 놓은 곳에는 사자 한 마리가 뒷다리와 궁둥이 조금 남아있는 얼룩말 사체를 옆에 끼고 앉아있었고 하이에나 다섯 마리가 침을 흘리며 음흉한 소리를 만들면서 조금씩 조여오고 있었다. 사자는 벌떡 일어나서 큰소리로 포효한 후 오줌을 세게 갈기고는 뒷다리로 번갈아 땅을 치듯이 파더니 벌떡 다시 앉아버린다.
우리는 처음 이 광경을 찾은 자가 되었다. 곧 차가 서너대 몰려왔다. 긴장된 그 풍경도 좋았지만 한시간이 넘어 더 진전이 없자 우리는 하루 종일 그곳을 지킬 수가 없었으므로 떠나야만 했다. 제리 말에 의하면 얼룩말은 하루 전에 잡힌 것 같고 그동안 사자가 차지했었지만 조만간에 그룹으로 대항하는 하이에나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했다.
얼룩말, 이랜드의 끝없이 많은 수가 이동하는 광경은 정말로 볼만했다. 얼룩말은 특히 엉덩이 주위의 무늬가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제리는 두 마리의 쇠똥구리가 지푸라기를 동그랗게 말아서 이동하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마이에나 레익이었다. 이곳에서는 코끼리와 바분을 제일 많이 보았다. 모기장이 잘 쳐 있는 그림 같은 곳이었다. 아침 길에는 코끼리가 가득하였다. 홍학이 떼지어 있었지만 가까이 갈 방법이 없었다. 그냥 호수가가 빨갛게 물들여 있었다고 말하면 되겠다.
돌아오는 길에 마사이 사람들이 서너명 서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몰래 찍기보다 팁 1달러를 주고 찍어야지 마음먹고는 제리에게 그 뜻을 전해달라고 하자 저 사람은 영어를 잘하니까 나보고 직접 말하란다. 황급히 말하고 셔터를 누르면서 1달러를 그 손에 건네주었다. 제리는 그 사람 이름이 ‘클레몬트’라고 말하면서 시애틀에서 3년을 살다가 왔으므로 영어, 마랭기쥐, 쉬할리어 모두 잘한다고 했다. 갑자기 1달러를 준 사실이 창피했다.
그는 연구원으로 그롱고르에 온 미국여자와 사랑하게 되어, 그 여자는 함께 왔던 남편과 이혼하고 클레몬트와 결혼한 후 미국으로 옮겨 3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 다시 원주민 생활로 돌아와 3명의 부인과 생활을 이곳에서 한다고 했다.
자세하게 알 수는 없더라도 이 이야기 속에서 두 문화의 만남과 갈등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여자가 호기심에 마사이 남자와 결혼했나보다는 우리의 주장에 제리는 완강히 반대했다. 그들은 정말로 사랑했었고, 그래서 이전의 가정을 깨고 결혼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속에 행복이 오래 가질 않았는가 보다. 아마도 자기의 본질에 다시 돌아옴이 행복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김장숙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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