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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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기 <6>

2007-05-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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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산행과 사파리 체험 15일 <6>

정신없이 내려 온 하산길… 후유증에 기진맥진
“대기자들에 우린 영웅”

올라갈 때는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헤드랜턴으로 앞만 바라보고 따라갔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온 세상이 다 보인다. 앞에 우뚝 솟아있는 것이 마웬찌(5,149m)이다. 이 산은 킬리만자로와 형제지간인데(화산이 터질 때 함께 형성되었음), 킬리와는 다르게 뾰족한 봉우리들로 되어 있다. 몇 차례 등반사고 이후 현재는 등산금지 구역이다. 우리 눈에 익숙한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가 바로 이 마웬찌산이라고 한다.
우리가 시작한 키보가 어디인가 찾아보았다. 광활한 대지 위에 성냥갑 같은 구조물이 초라하게 보였다. 그곳에서부터 우리가 비안개 속으로 지나왔던 그 길이 굽이굽이 저 멀리 하늘에 닿기까지 뻗어 있었다. 왼쪽으로 마웬찌에서 들어오는 길이 키보 직전에 연결되는데 이것이 롱가이 루트이다.
저 바닥까지 행글라이더처럼 내려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민이는 지쳐서 자꾸만 처졌다. 미지 언니는 아무리 늦어도 임마누엘과 서 선생님이 계시니 걱정 없다. 친정오빠 손장권씨는 고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 올라갈 때는 당신이 생각하고 추구해온 것들을 끝없이 역설하고 논리를 폈는데, 지금은 말이 없다. 무릎이 아픈가보다. 속이 뒤틀리는지 얼굴이 심상치 않다. 데이빗과 깁슨, 윌리암도 가다가 간간이 벌렁 드러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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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는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는데 내려가는 길은 온 세상이 다 보인다. 다들 너무나 지쳐서 빨리 그만 마치고 싶다는 욕망으로 정신없이 내려갔다>

빨리 키보 산장에 도착해서 쉬고 싶다. 지난 10월 롱비치 마라톤 때는 20마일이 넘고부터는 체력이 거의 소모되어 걷고 싶었다. 그러나 이 고통을 끝내고 싶은 집념에 쉬지 않고 끝까지 뛰어갔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오직 그만 마치고 싶다는 욕망으로 정신없이 내려갔다.
화산재로 뒤덮인 길에 발이 푹푹 빠졌다. 나는 등산화 뒤꿈치로 찍으면서 눈길을 내려오듯 걸었다. 그런데 어느새 장화가 데이빗과 팔짱을 끼고는 날아가듯이 나를 지나쳐 가는 게 아닌가. 왜 게이터가 필수품인지 이제야 알겠다. 바로 화산재 길을 슬라이딩해서 내려가기 때문이다.
장화가 제일 먼저 키보에 도착했고, 나, 호열씨, 손장권씨, 정민이, 그리고 서 선생님 부부가 차례로 들어왔다.

야외 수료증 전달식에 참석한 포터·가이더들
깨끗한 옷차림에 아름다운 노래 불러 감동 안겨

정민이는 도착하자마자 간이침대에 고개를 파묻고 울더니 쪼그린 채로 잠이 들었다. 그녀는 우르피키(그 사람들은 이렇게 발음했다)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고 온 힘을 다해 정상에 갔었단다. 혜성 언니는 먼저 내려와서 푹 쉰 후 회복된 모습이었다. 식사는 아브라함과 다른 조수들이 함께 들고 왔다. 데이빗을 비롯한 산에 올라간 가이더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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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장화가 쪼그리고 앉아 쉬고 있다. 장화는 키보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잠시 쉬었다가 짐을 싸서 포터에게 보내고 우리도 출발했다. 이름 없는 한 포터의 무덤을 지나쳤다. 무거운 짐을 나르다 비를 맞은 후 탈진하여 생명을 잃은 그를 위한 무덤이란다. 그 이후부터 철저히 50파운드(22kg)로 무게를 조정한다 하였다. 짐을 머리에 이고 혹은 어깨에 메고 오는 포터들과 쟘보 쟘보(헬로 헬로) 인사를 나눴다.
호롬보에 도착하니 돋대기 시장처럼 붐볐다. 우루사에서 출발했다는 한국인 38명 단체팀이 들어와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영웅이었다. 갖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이틀 전에 이곳에서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물어보고 또 물어봤던 우리였다.
다음날 아침에 들은 너무나 잊지 못할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빠네는 솜으로 만든 캠핑용 슬리핑백을 하나 가져 왔는데 가방에 반 이상 차더란다. 그래서 갈 때는 버리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 문제의 슬리핑백을 38명 중 한 사람에게 1만원받고 팔았다. 그 사람은 ‘전기장판’을 가져왔단다. 당연히 너무 춥게 이틀을 자고 난 후 이곳에서 따뜻한 슬리핑백을 구한 것이다.
유럽에서 온 40명의 또 다른 단체 손님이 있었다. 데스몬드는 하루에 75명이 마랑고 루트, 헛의 정원이라고 했다. 어디에나 예외가 있는가 보다. 어쨌든 식탁보를 도저히 펼칠 수 없었던 데이빗은 사정을 설명하면서 더 기다려주면 최선을 다해서 자리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두 시간 후, 그는 밖의 테라스 테이블에 우리를 앉혔다. 늦은 저녁이지만 행복하고 여유 있게 즐겼다.
다음날, 우리는 만다라 헛에서 호텔에서 배달해온 신선한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서 미지 언니는 구급차를 타고 국립공원 입구까지 갔다. 여자 혼자 탈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내가 동행했다. 가능하면 호텔에 빠른 시간에 도착하여 포터들을 일찍 돌려보내려는 서 선생님의 배려 때문이었다. 그곳으로부터 집까지 두 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포터도 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포터 12명, 가이더 5명에 우리 일행 8명을 더하니 총 25명의 큰 부대였다. 호텔의 야외 회의장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우리는 드링크를 대접하고 감사의 팁을 주었고, 그들은 수료증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 굽이굽이 돌다가 못 오는 길이여, 마웬찌 너도 함께 가고 있구나’하는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던 초라한 옷차림을 모두 벗어버린 후 멋있는 옷과 깨끗한 모습으로 단장하고 그 기념식에 참석했다. 비록 몸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가난한 나라이지만 국가적으로 포터들을 보호하여 외국인이 단신으로 산을 올라갈 수 없게 하는 규칙이라든지, 아름답게 화음으로 장식하는 노래를 들려줌으로써 자신들을 드러내는 그 모습들에 찡하게 마음이 녹아들었다. 우리도 가난했던 지난날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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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손장권씨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마쳤다는 수료증을 받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많은 사진들이 서 선생님 작품임을 밝힌다.
사용하도록 허락하심에 감사드린다. 킬리만자로와 사파리에 관한 서 선생님의 사진과 글은 그의 홈페이지 (http:// blog.chosun.com/ad6qe)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다음주부터 사파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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