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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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기 <4>

2007-04-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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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산행과 사파리 체험 15일

고소증-추위 겹쳐 모두 입맛 잃고…

걸을때마다 숨가빠 약 먹으면 손발저려
눈뜨자 물만 벌컥… 비상식량으로 끼니


1월21일
어제는 호롬보에서 하루 더 잤다. 1만피트가 넘어버린 고도에 적응하여 고소증을 없애려고 우리는 4박5일 대신 5박6일 프로그램을 샀던 것이다. 멀리 키보 산장이 보이는 곳까지 왕복 네 시간 하이킹하고 숙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돌아와 보니 내다 널은 등산 양말이 보기 좋게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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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는 포터들. 킬리만자로는 국가적으로 가난한 포터들을 보호하기 외국인이 단신으로 산으로 올라갈 수 없는 규칙이 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하루 더 자는 것이 크게 도움들 주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키보 산장까지 가는 길이 시종 마운틴 위트니와 비슷한 높은 고지대를 하이킹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한 후 밤새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고 아침에 우르피크를 정복하자마자 곧 먼 길을 하행해서 키보를 거쳐 호롬보까지 하루 종일 내려와야 되는 그 길고도 힘든 일정은 이미 인간의 버틸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기 때문에, 하루 더 고소적응 훈련을 한다 해서 차이가 있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어쨌든 5박6일 프로그램에서 성공률이 더 높다고 했다.
포터가 내 짐을 가져갈 수 있도록 잘 꾸려 놓은 후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빗겨 지나가는 아침 햇살이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색다른 빛깔로 우뚝 솟아 있었다. 오늘의 긴 여정을 생각하면서 가능한 많은 음식을 먹으려 노력했지만 모두가 입맛을 잃은 듯했다.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필사적으로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하루의 기본량 4L를 가능하면 많이 출발 전에 먹고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경험이 거의 없는 오빠네 식구는 옷을 어떻게 입을지, 꼭대기에는 얼마나 추울지, 성공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걱정하며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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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 산장 근처에 오자 빗방울이 드세져 빗줄기가 대지와 우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비옷을 꺼내서 위 아래로 입고, 데이팩도 커버를 씌웠다>

내 남편은 화산으로 만들어진 산은 꼭대기가 폭발하면서 형성된 림(rim)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므로 그 중의 낮은 지점 길만스 포인트에 있든지 높은 점 우르픽에 오르든지 정상을 한 것에는 똑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혹시 만에 하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식사 후 숙소로 가는데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숨이 찼다. 지난밤에도 몸을 돌아누울 때마다 숨이 가빴다. 다이아목스(고소증약)를 먹으면 손발이 저리고 몸의 부분이 마비되는 느낌이 왔다. 안압을 조절하는 약으로도 통하는 이 약은 혈관의 피의 양과 압력을 조절하는 모양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이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약을 먹었다.
수도에서 먹을 물을 받고 있는 나를 보고는 유럽에서 온 한 여자가 왜 끓인 물을 담지 않느냐고 말했다. 호텔 주인 데스몬드는 헛의 물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했고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서 선생님은 벌써부터 가이더에게 끓인 물을 부탁하고 계셨다. 나는 이미 저질러진 몸인데 하면서 그냥 물을 담았다.
길가에는 그 마르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꽃들이 있었다. 새들이라는 곳에서 잠시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제니를 다시 만났다. 몸이 날렵한 그녀는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하루 먼저 성공적으로 등반을 끝낸 그녀를 마랑고 호텔에서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올케 언니는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서 쳐져서 오고 있었고, 미지 언니는 유난히도 이번 여행을 힘들어 하셨다. 부가이더들이 처진 사람들을 항상 보조하며 동행했다.
점심을 끝내기도 전에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점점 드세졌다. 곧 온 세계가 물안개로 뒤덮이며 빗줄기가 대지와 우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비옷을 꺼내서 위 아래로 입고, 데이팩도 커버를 씌웠다. 손이 젖어서 얼어붙기 시작했지만 남다른 이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사진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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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증에다 추위까지 겹쳐 아무리 먹으려고 노력해도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키보 산장 4,703미터(1만5,430피트)가 보이면서 바람결에 안개들이 흩어졌다. 그 곳에 도착하자 비바람이 다시 시작되었다. 배정 받은 큰 룸 숙소에 들어가 보니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10개의 벙커베드가 이층으로 놓여 있었다. 침낭을 펴고 잠시 나른한 몸을 달래며 누웠다.
데이빗은 핫 티와 저녁인 누들요리를 놓고 갔다. 자기가 깨우러 올 때까지 눈을 붙이라고 했다. 추워도 창문을 하나 열어 놓아서 숨이 막히지 않도록 당부하고 나갔다. 아무리 먹으려고 노력해도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우리는 각자가 가져온 최후의 비상식량을 꺼내어 서로 나누었다. 오빠는 홍삼을 설탕에 재어 말린 것과 대추를 내어놓았고, 서 선생님 부부는 각종 과일 말린 것과 비프저키, 그리고 미숫가루를 내어놓으셨고, 나는 에너지 바와 아몬드를, 장화는 우황청심환을 내어놓았다.
강력한 두통약과 헤드랜턴과 선블럭 크림 그리고 선글라스를 꺼내기 쉬운 곳에 준비해 놓고 침낭에 들어갔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정말 추웠다. 몸이 오그라드니 화장실 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일어났다.
밖에는 비가 멎었고 길만스 포인트라는 길 안내 팻말이 보였다. 지붕에는 물받이가 길게 가로로 매달려 있었고 그 끝에는 커다란 물탱크의 주둥이가 열려 있었다. 이 곳은 물이 없는 곳이다. 포터들이 40갤런의 물과 식량을 호롬보에서 메고 온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힘들었다. 잘 생기고 보기 좋은 한 젊은 청년이 건물에서 나왔다. 얼마나 힘차게 걷는지, 역시 다르구나 하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잽싸게 몇 발자국을 옮기더니 벌컥 하고는 모든 것을 토해 내었다. 그래, 지금은 누구나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야.

김장숙씨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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