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나이를 먹는다는 것

2007-04-0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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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는 자기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인 것 같다. 처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움켜쥘 것처럼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난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깎이고, 채이고, 다듬어지고, 압력을 받으며 쥐고 있던 손가락을 하나씩 펴게 된다.
내가 첫 번째 손가락을 펴게 된 것은 대학 원서를 썼을 때였다. 쉽지 않은 성적으로 겨우 쓴 원서를 접수하러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내 부주의로 원서를 잃어버렸다. 가슴만 졸이다 결국은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몸에 힘을 빼니 마음은 날아갈 것 같고 신기하게도 방법이 생겨 일도 해결되었다. 이렇게 손가락을 폄으로 맛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나의 두 번째 손가락은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린 후에 펴졌다. 한 사람에게 매달리려던 마음. 한 사람을 내 안에 가두어두고 싶었던 마음. 이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 떠난 후에 단지 나의 욕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관계에 있어서 놓아줌으로써, 서로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음을 알았다.
나의 세 번째 손가락은 사업을 실패하며 펴졌다. 반드시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이 나의 실패를 어떻게 판단할까 하는 두려움에 점점 어려워질 때마다 움켜쥐고, 힘을 주었다. 움켜진 손을 펴는 순간 그렇게 편안하고 마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길이 보였다.
움켜쥔 손 안에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듯이, 내가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순간 나에게 주어진 더욱 많은 기회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물 위에 나의 몸을 띄우듯이 힘을 빼고 가볍게, 세상에 내 몸을 띄우고 싶다.
아직도 쥐고 있는 많은 손가락이 언젠가는 다 펴질 것이다. 그 손가락이 다 펴지는 날, 나는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재키 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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