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를 먹는다는것 여성의 창 / 재키 김

2007-03-3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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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는 자기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인것 같다. 처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움켜쥘 것처럼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난다. 그리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깎이고, 채이고, 다듬어지고, 압력을 받으며 쥐고 있던 손가락을 하나씩 펴게 된다.

내가 첫 번째 손가락을 펴게 된 것은 대학원서를 썼을 때였다. 쉽지않은 성적으로 겨우 쓴 원서를 접수하러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던 중 내 부주의로 원서를 잃어버렸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이런 실수를 한 자신이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꼭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힘을 주니 어깨만 뭉치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만 졸이다 결국은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몸에 힘을 빼니 마음은 날아갈 것 같고 신기하게도 방법이 생겨 일도 해결되었다. 이렇게 손가락을 폄으로 맛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나의 두 번째 손가락은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린 후에 펴졌다. 한 사람에게 매달리려던 마음. 한 사람을 내 안에 가두어두고 싶었던 마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알려 하고, 삶에 깊이 관여하고 싶었던 마음. 놓치기 싫다는 마음. 그 사람의 모든 걸 가지고 싶다는 마음. 그 대상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고 싶었던 마음. 이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 떠난 후에 단지 나의 욕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관계에 있어서 놔 줌으로써, 서로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 대상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서로 더 행복할 수 있음을 알았다.

나의 세 번째 손가락은 사업을 실패하며 펴졌다. 반드시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이 나의 실패를 어떻게 판단할까 하는 두려움에 점점 어려워질 때마다 움켜쥐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려워지고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움켜진 손을 펴는 순간 그렇게 편안하고 마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길이 보였다.
움켜쥔 손 안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듯이, 내가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순간 나에게 주어진 더욱 많은 기회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물 위에 나의 몸을 띄우듯이 힘을 빼고 가볍게, 세상에 내 몸을 띄우고 싶다. 그렇게 자유롭게 그 물이 흐르는 데로 가고 싶다.

아직도 쥐고 있는 많은 손가락이 언젠가는 다 펴질 것이다. 그 손가락이 다 펴지는 날, 나는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애초부터 나에게 주어져있던 몫을 다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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