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라크 참전 용사들의 죽음에 대하여

2007-03-2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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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되는 이라크 참전 용사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의 부모를 직접 만날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왜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목숨을 바쳐야 했는가? 이 질문은 나에게도 매일 반복되는 때가 있었다. 몬트레이와 페블비치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망을 앞에 두고 숙소로 돌아올 땐 외롭고, 불안했고, 그럴 때마다 한국인인 내가 왜 미국에 와서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는 지 묻곤 했다.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원으로 규모가 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육군 리쿠르터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는 내가 군에 입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싸이닝 보너스 $8,000에 혹해서 난 시험을 치루고 미군에 가입했고 한달 휴가, 병원비 무료, 군대 비행기 사용시 $10 요금, 세계 각지의 여행 기회 등등의 특혜를 들으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엄마 곁을 떠나서 독립생활을 할 수 있고 월급봉투 전액을 갖다 바칠 필요 없는 곳, 그리고 연애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늘 5-6 마일의 달리기를 해야 했고 매주 금요일은 8마일의 달리기를 해야 했다. 8마일을 끝낸 사람에게는 3일 휴일이 주어졌고 나는 한번도 빠짐없이 이 휴가를 챙기는 사백명 중에서 거의 유일한 여군이었다. 키가 작아서 오십파운드 짜리 배낭을 등에 멜 때는 거의 엉덩이 밑에까지 내려가서 등을 구부려야 했다. M-16을 사용할 때는 팔이 짧아서 두꺼운 양말과 수건을 싸서 팔꿈치에 단단히 묶고 총을 겨냥했다. 이런 가운데에도 난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자각하면 생존경쟁에서 죽음은 면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상기했다.

한국에선 군대에 가면 정신차리고 사람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병역의 의무에 한숨짓는 힘없는 부모들의 넋두리이다. 미국군대는 자원 입대이다. 한국과는 달리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삶의 현장은 전쟁터에도, 군대에서도 재현될 뿐이다.

김정희/산타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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