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성 우월주의 여성의창 / 제키 김

2007-03-2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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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이 정도 전두면 저고리 정도는 벗어주셔야지요!”
나를 압도했던 황진희의 한 장면이다. 신분을 뒤흔드는, 고정관념을 뒤집는 장면이었다. 충격과 동시에 왠지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원한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남성우월적인 가부장적인 시대에, 여자가 그것도 기생의 신분으로, 여자를 노리개 삼는 같은 방법으로 남자를 희롱했다는 것이 통쾌하다고 할까?

나에겐 늘 남자이기 때문에 우월하고, 남자이기 때문에 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관념들이 불편했다. 남자 형제 사이에서, 동네에 여자란 나 혼자여서 늘 남자 사이에서 지냈다. 담 타기, 나무에 기어올라 과일 따기, 칼 싸움, 제기 차기 등등, 남자들에게 지지않을 만큼 잘 했다. 그래서 내가 남자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다름을 인식하게 된 것은 서서 볼일을 보는 동네 남자친구들을 접했을 때이다.

남자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오줌발 멀리 보내기 시합을 할 때는 바로 무릎을 꿇어야 했다. 한번은 그 모습이 부러워 흉내내 보기도 했지만 내 신체는 그 방법에 맞지않게 만들어져 있음을 바로 깨달았다.


막 대학을 들어가니 180명 정원에 11명이 여자고 나머지는 남자 학생들이었다. 그야말로 너무 많은 남자들과 경쟁하고 공부하며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받는 건 없는지, 무시당하는 경우는 없는지 촉각을 세우며 생활했다. 가끔은 남자 동기나 선배가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남성 우월주의라는 주제로 열띠게 토론도 하였다.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여자도 똑같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이 3박 4일의 산악훈련을 가기 전 그 시기에 나를 지배했던 생각이다.

설악산 완주 훈련은 쉽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 토하는 친구, 주저앉아 우는 친구,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올라올 때, 앞에 가는 남자 동기가 내 손을 잡아주더니 뒤따라오는 다른 남자 동기는 등을 받쳐주었다. 남자에 대해 판단하며 비판하는 부끄러운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끌어주는 손에 이끌려 받쳐주는 손길에 힘입어 설악산을 완주하고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남자를 보는 나의 시각은 많이 달라졌다. 남자는 여자의 적이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있음으로 여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인생이라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쁘게 생각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전체적인 인생의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남자는 마주 싸워야하는 대상이 아니다. 서로 협력하여 책임지고 있는 가정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져야 하는 동지이다. 서로가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며, 그 다르다는 장점을 이용해 무한한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협력하며 노력하며 가다 보면 언젠가는 완성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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