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재키김(부동산 전문인)

2007-03-02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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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늘 위엄있고 큰 존재였다. 남자형제 속에서 늘 극성스럽게 자라온 나에게 아버지는 늘 단속하는 사람이고 규율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남자형제보다 더 씩씩하고 외향적인 성격 탓에 맞기도 많이 맞았고 혼난 횟수도 형제 중에 제일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맷집하면 자신있다고 지금도 말한다. 여자는 남의 집에 보내야 할 존재이기에 더욱 바르게 가르치려는 생각에서 더욱 엄하게 다루셨다는 것이 이유이셨다.

어렸을 땐 딸이 하나라 딸만 예뻐한다는 소리를 들으실 만큼 안아주기도 많이 안아주셨다는데, 그런 기억들보다 머리가 커가면서 가부장적인 기성세대라는 시각으로 아버지를 보게됐다. 그래서 거세게 반항도 하고 판단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교사이신 아버지와 한 학교에 다니게되어 정말 황당했다. 많고 많은 학교 중에 왜 하필 그 학교인지…. 학교에 들어가보니 학교에선 인기가 많은 재미있는 선생님이셨고, 교사끼리는 의리있는 동료로 인정받고 계셨다. 어떤 학생은 나의 존재를 질투낼 만큼, 매일 책상을 닦고 꽃을 갖다놓을 만큼 따르고 좋아했다.


선생님들은 누구누구의 딸이라 혼낼 일도 혼내지 않으시고, 아버지로 인해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런 환경도 낯설고 어색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6개월 만에 다른 학교로 지원하여 전근가셨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신 그 때의 고마움을 지금에서야 절실히 느낀다.

젊었을 땐 공군 장교로 다음엔 학교 선생님으로 늘 남을 리드하고 가르치시고 호령하시던 아버지가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부딪치며 갑자기 기운이 빠지셨다. 갑자기 늙어가신다. 처진 어깨를 보면 마음이 아파온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한다며 소주를 따라주시던 우리 아버지.
사춘기 때 성교육책자를 슬쩍 던져주고 가시던 우리 아버지.
흥이 나시면 장소 안가리고 탭 댄스를 추시는 우리 아버지.
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우리 아버지.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시고, 신성일보다 더 잘 생긴 우리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의 어깨는 넓고 든든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직도 아버지는 젊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하신 존재라 말씀드리고 싶다.
오늘 아버지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제 2의 멋진 인생을 미국에서 살아내시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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