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며 배우며
▶ 유설자<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한참 잠에 취해 있는데 누구지, 이 이른 시간에? 전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작은 딸이다. 목소리가 우울하게 축 쳐져 있다. “엄마, 나 왜 이런지 몰라. 너무 외로워.”
결혼 후 6년간 아담한 집을 지어 입주하고 자기 취향에 맞게 아기자기 잘 꾸며가며 첫째, 둘째 아이 낳고 이웃들과 동기간처럼 우정을 가꾸며 잘 지냈다. 잘나가던 직장에 불경기로 감원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사위가 직장을 노스캘롤라이나로 옮기게 됐다. 셋째 낳기 직전 다행히도 집이 팔리고 아기를 낳자마자 곧 바로 이사하는 힘든 과정에서 동기간 같던 친구들과의 헤어짐, 또 새집을 사서 이사하는 육체적으로 힘든 일, 친한 친구들과의 떨어지는 외로움, 더욱이 사위가 출장 중이라니 이런 조건에 임신 후 홀몬 불균형까지 겹쳐 복합적 우울증을 갖게 된 것일 테다. 흔히 산후에 일어날 수 있는 산후우울증, 영어로는 ‘Baby Blue’ 라 부른다 한다.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38년 전 나의 젊은 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결혼 후 39일만에 남편이 해외출장지로 떠나 아쉽게도 신혼의 단꿈을 다 꾸지도 못했다. 남편의 빈 자리 대신 시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임신한 몸에 우울증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터다. 첫 아기를 낳고 8개월이 돼서야 돌아온 남편이었으니. 하루가 멀다고 오고간 그리움의 편지가 큰 위안이었으며 남편 없이 지내온 그 긴 세월 속에서도 가족이 있으므로 견딜 수 있었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 아닌가. 돈도, 명예도, 일도, 무엇이라도 가족 말고는 그 무엇도 정신적인 안정감을 갖지 못함을 알았다.
한여름 소낙비를 안고 오는 검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지나갈 때는 순간적으로 캄캄하다. 그러나 어두움은 한순간이며 다시 밝아온다. 밝음은 길고 어두움은 순간이다. 따라서 순간적인 현실의 그늘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 몫의 삶을 잘 챙겨야 할 것임을 배운 시절이었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은 우리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켜줌을 깨닫기도 했던 그 시절에 고마워하기도 한다. 인생은 노력이요 노력이 행복을 만드는 게 아닐까.
작은 딸네에 가서 몇 날을 함께 지내고 돌아왔다. 나의 젊은 날의 추억을 들려주며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점점 딸의 표정이 밝아짐을 보면서 역시 보듬어주시는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에 감사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사랑이 없으면 우린 날개 부러진 추한 새와 같을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삶에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듯이 서로서로 존중히 여기며 위해주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어제까지 웃지 않던 이에게 오늘 아침 환하게 웃음으로 대해보면 어제 보지 못했던 새 아침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며 젊은 날의 추억이 헛되지 않은 밝음에 한껏 미소를 지어본다.
유설자<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