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의 은행나무
2006-11-01 (수) 12:00:00
계절이 바뀌어 쓸쓸한 가을이 찾아왔다. 쉬-이익! 차가운 세찬 가을 바람이 나의 두 볼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미소를 짓는다. 머리 위에는 단풍잎들이 우수수 예쁜 색깔로 물든 나무 잎들이 머리 위로 깡충 뛰어내리면서 아래로 곤두박질을 친다. 세차게 불어오는 가을 찬바람은 아마도 포토맥 강변에 우뚝 자리잡고 서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들의 휘파람 소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의 일이다. 점심시간이면 늘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바깥을 뛴다. 포토맥 강가에 자리잡고 있는 직장은 무성한 나무들로 울타리같이 둘러싸여 있다. 숨을 헉헉 되며 씩씩거린다. 그러던 순간 무엇인가 눈에 익은 열매가 눈에 뛴다. “어마나, 이게 뭐야. 은행 아냐.”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춘다. 발로 살짝 문지르며 껍질을 벗겨보았다. 은행이었다. 귀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부터는 시간만 나면 줍겠다는 결심을 했다.
은행의 옻이 살에 닿으면 가려우며 빨갛게 부어 오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린 소녀 시절이었다. 4살 때인 것으로 기억이 난다.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중학교 다니는 외사촌 오빠가 독이 있는 열매를 잘못 만져 옻이 온몸에 번졌다. 외할머니는 수탉 벼슬의 피가 약이 된다고 알고 계셨다. 할머니는 오빠를 뒤뜰 벽에 세워놓고 아랫도리 바지를 내렸다. 벼슬을 잘라 흐르는 피를 부어오른 곳에 발라주는 것을 몰래 훔쳐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래서 속장갑과 고무장갑을 준비하고 집게도 준비했다. 빈 통도 준비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하는 것을 뒤로 미루고 나무 밑에 떨어진 은행들을 열심히 주워 담았다.
열심히 주워 모으니 집안과 베란다에는 은행으로 가득 채워졌다. 냄새는 견딜 수 없는 지독한 인분 냄새와 똑 같았다. 처리하기 곤란한 지경에 빠져 고민을 하다가 가게에 갖고 가 파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한국 그로서리로 들고 갔다. 구매부장을 찾았다. 그는 두 말 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큰 거액은 아니지만 용돈도 벌었다. 매년 가을이 오고 나뭇잎이 떨어질 무렵이면 은행 줍는 일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그러던 중 2년 전의 일이다. 주워 담는 일에 몰두하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깜빡 잊은 것이었다. 은행의 옻이 손에 묻고 팔뚝에도 묻은 것이었다. 그 이후로 가렵고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약 일주일동안 약을 먹고 바르며 몸을 정상으로 회복시켰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머리 속에서만 은행을 주워담았다. 가을 하늘을 향해 우뚝 서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들을 기억 속에서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조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