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은 나의 조국

2006-07-2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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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예비역 준장)

집을 떠나야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나라를 떠나면 고국의 그리움을 절감한다. 그래서 외국에 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나는 일본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귀화한 것입니다. 내게 조국이 있다면 그 것은 북조선이 아니라 바로 나의 ‘가족’입니다.”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수년 전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동포 가수의 이 말은 가족의 소중함을 한 마디로 대변하고 있다.
‘가정’과 ‘가족’ - 고향과 어머니를 생각케 하는 낱말이다. 내가 낳고 자란 곳, 부모님이 언제나 곁에서 돌봐주었고 형제들과 오순도순 함께 지내던 생명의 보금자리. 그 곳, 그 분들을 어찌 꿈엔들 잊으랴.세계 어느 나라 보다 식솔간의 유대가 강하던 한국의 가정이 지금 무너지려하고 있다. 백년을 함께 살기로 맹서하고 새로 일군 가정들이 세 집 걸러 하나씩 깨지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나의 가정이 허물어지는 것은 한 쌍의 남녀, 부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쇄적으로 많은 사람과 사회 전체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갈라서자고 도장을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참지 못하고 양보할 줄 모르는 성정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 같으면 ‘내가 참아야지’하고 지나칠 일들도 요즘 젊은 주부에겐 양보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인권과 평등사상, 여권 신장과 교육기회의 증가는 더 이상 여성으로 하여금 인내를 미덕으로 삼지 않게 했다. 여기에다 이기심의 증가, 금전 만능주의, 성의 개방, 개인 지상주의 등이 이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아무리 그렇더라도 가족과 가정은 마음과 몸을 편히 쉴 수 있는 마지막안식처가 아닌가. 삶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근원이며 놓아버릴 수 없는 삶의 보금자리다. 그러기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고 가꾸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이라크에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면 내 몸이 찢기는 것처럼 괴로워요. 그렇게 싫어서 떠나온 고국이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습니다.” 생활고와 후세인의 독재 때문에 이라크를 떠나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마지드 씨의 이 목 메인 소리에서, 우리는 화목한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전통적 가부장제가 무너진 자리에 갑자기 불어 닥친 서구식 개인 중심적 가족제도의 바람은 우리를 빈 들판으로 몰아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사이, 패륜 범죄와 가정 폭력, 이혼의 급증과 노인 자살 증가, 학원 폭력과 파렴치범의 난무가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자주적 존재다. 동시에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정체성을 떠나면 존재의 의미를 잃기 쉬운 ‘준거집단(準據集團)’이다. 그래서 지난날의 전통과 뼈대를 중히 여기고 역사에서 배우려하는 것이 아닌가. 바탕 없이 받아들인 외래적 가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어릿광대의 노리갯감일 뿐이다.

외국 유학을 하고, 현대식 교육을 많이 받고, 좋은 일자리를 얻어 성공한 삶을 누릴지라도 부모를 거역하고 가족과 등진 생을 이어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백만장자가 나를 알아주는 가까운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 가서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21세기형 우리식 가정 모델을 재정립해야 할 책임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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