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처럼 있는 것
2005-12-23 (금) 12:00:00
▶ 인생 칼럼
▶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세상을 앞서가는 사람은 튀는 만큼 부담을 안고 살게 되어있다. 유명인사나 명망가는 알려진 것 못지 않게 세인의 이목에 신경을 써야한다. 사람들의 눈치 살피다보면 마음놓고 살기 어렵고 긴장하며 생활하기 때문에 사생활이 편할 수 없다.
특출나게 처신하는 사람이 큰일을 도모하려면 큰일에 등장해야하며 운명처럼 전면에 나서야 한다. 명예와 권력을 잡게되기라도 하면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야망도 품을 만도 하다. 자신의 생활은 안중에 없고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사람은 항상 긴장감이 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젊은 시절에는 위인을 기준 삼아 꿈을 키운다거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닮고자하는 모방심리를 지녀보기도 한다.
큰 포부를 지니는 건 젊은 날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꿈이 클수록 세상무대가 냉엄한 게 세상사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없던 시절의 객기나 만용이 부끄럽기도 하고 부질없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넘치는 출세욕과 자기 현시욕이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온갖 투쟁 끝에 재력과 권력과 명예를 거머쥔 사람이 말년에 이르러 불행한 경우가 허다하고 심한 경우 패가망신도 한다. 평생을 이름에 매달려 사는 유별난 삶이 그만큼 치르는 대가가 녹녹치 않다는 뜻이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알려진 이름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다. 세상사람들의 시선을 깊게 의식하다보면 거기에 휴식이 없다. 부담과 불안만 늘어간다.
세상은 달콤한가? 아니다. 온갖 기회와 경쟁이 불꽃튀는 삶의 현장 일뿐이다. 행불행이 엇갈리는 투쟁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분주한 환경에서 평화롭고 단순하며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처럼 지혜로운 일이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의 주목받는 일은 잘 나가는 사람들 몫으로 치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바깥에 서있는 사람이 세상을 더 잘 본다. 나서는 일보다 비켜서는 일이 훨씬 어렵다. 빈 수레가 소란하고 빈깡통이 시끄러운 것처럼 단 한번뿐인 인생을 구태여 요란하게 장식할 이유가 없다.
이름 뒤에 있는 이름도 이름이다. 이름 밑에 있는 이름도 이름이다. 이름도 이름 나름이다. 앞에 있건 뒤에 있건 편한 이름 지니고 사는 게 상책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나서야 이름들이 숨어버리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정작 나서서는 안될 이름이 설쳐되면 주변이 소란하고 세상이 위태로워진다는 얘기다.
‘노자’ 같은 이는 자신의 헛된 이름을 없애는데 만년을 사용한 인물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
“없는 것처럼 있는 것……”
그 이름만 들어도 믿음직스럽고 편안한 이름이 만나보기 어려운 세태이기에 꺼내본 말이다.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