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년을 사는 지혜

2005-12-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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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의견

▶ 김복훈/VA

고희의 나이로 알려져 드물게 볼 수 있었던 70세 노인들이 이제는 말 그대로 수두룩하고 80세 심지어는 90세가 넘은 노인들도 꽤 눈에 띤다. 참으로 획기적인 인간 수명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사람이 이전보다는 10년 이상을 더 오래 사는데도 역시 인생은 짧고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이 시간의 굴레에 매달려 어느것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지금의 내 나이 80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월의 빠름을 절감한다.
오랜 장고 끝에 금년 초 아내의 만류를 물리치고 미국에 와서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였다.
은퇴 후 나는 얽매인 것에서 나 자신을 다 풀어놓고 자유를 만끽하면서 물 흐르듯 순리에 맞춰 사는 지혜를 터득하였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니 만사에 매임이 없다. 집에 있고 싶으면 몇날을 있으되 도무지 무료하지가 않고 인터넷을 열고 여기 저기를 누비면서 보고 듣고 있노라면 볼 것이 너무도 많다.
나는 요즈음 하루 24시간을 2등분하여 이틀 몫을 사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요즈음이 동지철이라서 밤과 낮의 길이가 거의 같기에 24시간 짜리 하루를 둘로 나누기가 알맞다. 이 12시간짜리 미니 하루는 다시 6시간 짜리 밤과 낮으로 구분되면서 하루의 기능을 다하게 된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잠이 깬다. 미니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루 사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체력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만보기를 차고 동네 공원 조깅 트랙을 속보로 걷는다.
오후 3시가 되면 미니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을 자는 밤 시간이 된다. 오후 4시 30분까지 1시간 30분동안 전반부 하루의 밤 시간을 낮잠으로 때운다. 오후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기상하면 그때부터 후반부의 또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짧은 오수에서 깨면 활력은 다시 넘친다.
은퇴하고 나니 서두를 일도 없고 조급해서 허둥대는 일은 아예 없다. 골똘히 생각할 일도 마음을 심란케 하는 번뇌도 없으니 만사가 태평하다.
세상 거센 풍상 속에서 산전 수전 다 체험했고 이 사연 저 사연 애증을 겪었으며 세상사는 이치와 의와, 불의를 보았고 세상사 성패의 노하우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가족의 정신적인 기둥이요, 젊은이의 귀감이요, 이웃의 상냥한 사촌 역을 다 하는 노옹의 그런 평범한 삶을 살다가 멋있게 가는 노년의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복훈/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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