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서두 대사의 하나로 손꼽히는 “선물 주고받지 못하는 크리스마스란 생각할 수조차 없다”로 시작되는 ‘작은아씨들’을 읽었다.
뉴잉글랜드 마치 가의 네 자매들, 가정적이고 예쁜 큰 딸 메그(마가렛), 직선적이며 좋지 못한 성질을 다스리느라 매우 애를 쓰며, 집안 일보다는 글쓰기를 희망했고, 결국 작가로 성공하는 둘째 조, 천사처럼 착한 베스, 그림에 재주가 많은 에이미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19세기 작가 루이자 메이 앨콧(1832-1888)이 자신의 실제 가족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썼다.
책을 다 읽은 기념으로, 준 앨리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는 옛 영화 비디오를 빌려보았다. 동부지방의 하얀 눈, 그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 앉아 동생 베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조의 붉은 갈색 스커트가 360도로 둥그렇게 펼쳐진 것이 낙엽 색깔과 어울리며 매우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때 머리에 섬광처럼 J선배가 떠올랐다.
딸과 함께 팝콘을 튀겨 먹으며 ‘작은 아씨들’을 보았다는 선배였다. 우리는 내가 대학 졸업반 2학기, 오후에 모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만났다. 다른 잡지사에서 수년간 경력이 있던 터에, 국문과 출신으로 편집부에서 선배는 리더격이었다. 당연히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결혼과 함께 출판사를 먼저 그만두게 된 후 시간이 흘렀고 매직 마운튼에서 우연히 선배를 만난 것이 두 번째였다. 그러다 모 일간지에 거의 매주일씩 내는 생활 수필로 다시 우리는 만났다. 참으로 열심히 썼고 유익한 글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부고 란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배인 나는 어느 날 J선배를 또 그렇게 만날 줄이야. 56세, 췌장암이었다니. 그동안의 글을 ‘고국에서 온 손님’이란 유고집으로 두딸과 함께 남겨두고 갔다.
루이자 메이 앨콧은 거의 6피트의 큰 키에 남북 전쟁때 전쟁 간호사로 잠시 일했다. 그때 얻은 수은중독증과 장티푸스성 폐렴으로 고통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로서 크게 성공했다.
‘톰소여의 모험’.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자 주인공으로 그려진데 반해 ‘작은아씨들’은 세대를 통해 할머니로부터 그 손녀에 이르기까지 즐겨 읽혀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이목구비 바르고 잘 생긴 J선배의 얼굴이 나의 딸이 튀긴 팝콘 속에 하얗게 미소 지으며 숨어있다. ‘작은 아씨들’ 화면과 함께.
안순희/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