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자유
2005-12-11 (일) 12:00:00
▶ 목/회/칼/럼
▶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자유에 대해서 말했다.“정부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핵심 목표를 위하여 국민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자유의 기초를 세웠고,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람에게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자유가 문화와 과학의 발전을 이루게 하였고, 인간에게 숨어 있는 잠재력을 자유를 통해 이루어 내게 되었다. 그래서 임마누엘 칸트는 “자유란 모든 특권을 유효하게 발휘시키는 특권이다”라고 했다.
영국의 역사 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인류에 대한 적절한 연구(The Proper Study of Mankind)라는 책에서 인간의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가 있다고 했다. 이런 논리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소극적인 자유는 어떤 환경으로부터 피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자유를 말한다. 예를 들어 군에 입대한 군인이 제대날짜만 기다리다가 드디어 전역을 하게될 때 느끼는 그 자유는 소극적인 자유의 모습이다. 이런 자유는 발전을 이루기보다는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 잠시 편해지려고 하는 요령과 나태함만 만들게 된다. 그러나 적극적인 자유는 개인적인 것보다는 전체적이고, 포괄적이다. 구태여 예를 들자면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의 길을 걸으면서도 일본과 싸워 조선을 구해내고자 하는 정신은 적극적인 자유에서 나온 군인 정신이요 나라를 위한 충성심의 모습이다. 이사야 벌린은 소극적인 자유가 자본주의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공산주의가 탄생하게 했고, 적극적인 자유가 역사의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운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는 것을 해석하자면 결국 자유를 위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한국으로부터의 자유(From) 만을 위한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편견만 가질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있을 것이다. 또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 사람에 대한 폐쇄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한국으로부터의 자유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For) 목적과 뜻을 가진 자유의 이민이라고 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진 내 모습을 찾을 것이다. 설령 시위에서 화살이 떠났지만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도 성숙함을 이루어 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라디아서 5:13)
사실 어떤 자유이든 그 자유의 가치는 있는 것이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자유를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Something)보다는 어떤 것을 위한 자유(Freedom for Something)가 자기 뿐 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 즉 가족과 단체, 그리고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