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누는 삶

2005-11-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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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상

▶ 박용하/ VA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참 힘이 든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사는 것도힘이 들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이 인간 관계요 삶의 방향이다.
1950년대 말과 60년대초의 우리 집은 꽤 잘 살았다. 집에는 가정부가 둘이나 있었고 동네 정육점에서는 소꼬리를 많이 먹는다 하여 우리 집을 ‘꼬리 집’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병석에서 몇년이나 계시다 돌아가시니 말 그대로 ‘돌고 도는 세상’이 되었다. 학비가 싼 공립학교를 다녔던 나였으나 매학기 등록금 때문에 이름이 불려져야 했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매달 나의 한학기 등록금의 몇 배를 내고 과외를 하는 같은 또래의 친척들을 보는 것이 내게는 아픔이었다.
그후도 우리 집의 경제는 더욱 나빠졌고 쌀독 바닥에 박힌 흰 돌이 쌀 몇알로 보일 정도로 쌀이 떨어진 적도 꽤 있었다. 십시일반이라는데 여름철에 잘 사는 가까운 친척집에 놀러가면 쌓아놓은 쌀가마에 곰팡이가 피어날지언정 어느 누구도 추수때 우리에게 선뜻 한 가마를 내놓지 않음이 내게 상처가 되어 친척집에 가는 것을 피하곤 했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때의 그 아픔은 부족한 내 심성 탓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난은 나의 탓이지 그들의 탓이 아닌데 왜 내게 베풀지 않는다고 섭섭해하고 상처를 받았나 생각하니 오히려 부끄러웠다. 넉넉한 사람이 나누며 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나 내가 없는데 나와 나누지 않는다고 그들을 탓하고 비난만 할 수는 없고 나누고 아니 나누고는 그들의 몫이다.
특별히 운이좋거나 부모에게 유산을 많이 받았거나 또는 남을 아프게 하며 돈을 벌었을 수도 있겠으나 거의 대부분은 남보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하며 덜먹고 덜쓰고 덜 자고 덜 놀며 남이 모르는 아픔을 참아가며 돈을 모았을 수도 있다. 크건 작건 나눔은 남의 이목과 체면 때문에 하는 것보다는 본인 스스로 우러나와야 생명이 길다. 또 그것을 실천함에는 나눌 수 있는 내 생활자체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눔은 여유가 있어야 할수 있다고들 하나 결코 그렇지 않다.
나누는 마음은 일종의 습관과 같아 꾸준히 하면 익숙해진다.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만 있으면 작은 나눔은 생활속에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 그렇게 나누며 살면 당장은 얻어지는 것이 없을지라도 나누는 것이 아깝지 않은 그 마음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은총이요 축복이라 나는 생각한다.
박용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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