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우며 사는 나이

2005-10-1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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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배우며

▶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뒤뜰에 서있는 나무들은 뜨거운 한 여름이 돼서야 푸르름이 무르익으며 녹색병풍을 펴놓은 듯 아늑한 분위기 별장을 만들어준다. 온 몸을 빨간 색으로 치장한 예쁜 새가 우리 뒤뜰로 나들이 왔다. 자연에 순응하며 과욕을 내지 않고 소박한 삶을 즐기는 저 새들을 닮아 저 푸른 창공을 한없이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며 덱에 나가 앉아 문득 지나쳐간 시간들을 떠올리며 회상해본다.
누구나 다 구름 같고 무지개 같은 환상 속에서 한때를 보낸 기억을 지니고 나이를 더해간다. 몇 년 전만 해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서둘러 화장하고 출근시간 맞추느라 막혀있는 차선을 요리조리 바꾸며 동동거리며 달리던 그 시간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퇴근시간을 알리는 시계추를 바라보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일을 반복하며 지겨워했던 일들, 우체국 직원이 되어 저녁일을 했기에 식구들과 오붓한 저녁식사 함께 할 수 없음을 나의 두 딸들이 무던히도 투정했던 안쓰러운 추억들이 저 멀리 가고 있다.
비즈니스 하면 잘 할텐데 주위에서 마냥 부추겼지만 고집했던 직장생활. 유년 시절 아버지께서 사업하시며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고, 남에게 사기도 당하시고, 자금난으로 어머니께서도 엄청나게 마음고생 하시는 것을 보며 성장하면서 난 절대 비즈니스는 안 할 것이며 결혼도 샐러리맨으로 거기 틀에 맞추어야지 가 내 생활신조였다.
점점 안정된 중류생활로 접어들었지만 6.25를 겪으며 또 가난한 시절이 있었기에 나 자신이나 가족들의 지나친 낭비나 경제적 허영 같은 것에는 크게 맘쓰지 않고 살았다. 가난을 선하게 체험한 사람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값있는 것인가를 뒤 깨닫게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갖게 되고 네 식구가 단란함 속에서 지내다 어느 날 큰딸이 사귀던 미국 백인청년을 데리고 왔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도 고루한 답답함이 큰딸 마음을 서운하게 했었다. 큰딸이 결혼하고 그 다음해에는 작은딸도 결혼해 집을 떠나니 둘만 남게된 텅 빈 집안에 강아지 뽀삐가 유일한 귀여움을 안겨주었다.
이제는 두 딸들이 열심히 세 손자, 세 손녀의 할머니로 만들어주어 바쁜 나날 속에서 아이들의 재롱에 흠뻑 파묻혀 때론 힘들기도 하지만 즐거움 속에서 생기는 잔주름이 억울하거나 싫지만도 않은 당연한 삶의 훈장이라 미소짓기도 한다. 한때 큰딸 마음을 서운케 했던 이민 1세인 엄마의 마음을 큰딸이 이해해주니 고맙고, 나 또한 자기 아내와 자식들과 가정밖에 모르는 충실한 사위들이 이쁘고 대견스럽기 그지없으니 감사할 뿐이다.
큰 집에서 자그마한 집으로 옮기고 살림을 정리하느라 했으나 아직도 차고엔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이 꽉 차있다. 이러다가 누가 먼저라도 떠나가면 남은 사람 추억을 껴안은 채 슬퍼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도 정리해야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있는 것에 만족하며 남편과 같은 취미로 푸른 잔디를 밟으며 은퇴생활을 즐길 수 있는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하며, 비우며 사는 황혼의 나이를 맞아 첫 단추를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잘 끼어가며 아름다운 삶을 가꾸며 살아가리라.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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