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 남

2005-10-1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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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

▶ 서숙희 <교육학 박사>

초가을 높이 오늘도 푸른 하늘에 아름답게 흰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뜨겁게 쪼이는 태양 빛이 나의 뺨을 뜨겁게 적셨다.
오늘 우리 내외는 귀히 여기는 친구 강희갑 선생의 70세 생신 축하 연회에 초대받았다. 그와 우리의 ‘만남’은 어느덧 47년이 다 돼 가는 긴 세월이었다. 우리들이 이곳 워싱턴에 초기 유학생으로 와서 DC에 있는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어렵고 가난한 유학생활이었으나 언젠가 귀국하여 모든 배운 학식과 경험과 지혜를 싸매고 고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고귀한 꿈과 포부 속에서 그 어려운 역경에도 즐거워하며 유학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 동안 뿔뿔이 흩어지고 있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 분을 축하하게 되니 진정으로 감개무량했다. 한량없이 흘러버린 47년 전 아름답던 그 시절로 나의 생각과 마음이 깊은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우리와 함께 식탁에 앉으신 친구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눈에 그림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실로 아름답고 멋진 청년시대를 자랑하던 그들이었다.
특히 강희갑 선생은 그림솜씨가 뛰어났었다. 1958년 가을에 워싱턴 학생회(회장 박동성) 주최로 ‘한국의 밤‘을 한인교회에서 개최했다. 이 때 나는 문화부장이었는데 한국 문화를 미국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나의 남편이 감독을 맡아 ‘시집가는 날’ 연극을 처음 공연했던 일이 있었다. 강희갑 선생과 황의연 선생이 무대 장치를 맡아 장식했는데 그 아름답게 장식한 시골집과 시골 풍경은 마치 입체적으로 보였으며 막을 올리자마자 관객들은 입을 모아 환호했다. 나는 문화부장으로 참여했다.
그 뿐인가. 강희갑 선생은 수퍼 자이언트 회사의 로고를 도안하여 아직도 그 로고를 이 회사는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강희갑 선생은 그런 천재적 재능이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쾌활하고 긍정적이며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분이다.
특별히 우리 가정에겐 잊을 수 없는 은인이기도 하다. 우리 외아들을 낳았을 때 그 분은 우리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 오셔서 미역국을 끓여주시며 산후조리를 잘 할 수 있게 해주신 천사 같은 분이다.
이제는 그의 머리 백발이 되었고 눈가엔 잔주름이 졌으나 그의 바리톤 목소리와 얼굴에 항상 미소가 넘쳐흐르는 모습은 아직도 변치 않고 있다. 이러한 훌륭한 분과의 만나 오랫동안 변함없는 친구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한없는 축복이다. 연회를 떠나면서 언제나 인자하고 상냥하며 멋진 그의 아내와 강 선생님, 천생연분인 이 두 내외에게 끊임없는 하나님의 넓고 크신 사랑과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서숙희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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