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 매

2005-08-0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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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생각하며

▶ 이혜란/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들은 이야기다. 서울에서 치매를 앓고 계신 한 장모가 사위에게 “여보, 나 만원만 줘, 맛있는 것 사먹어야 하거든”이라고 해서 딸도 사위도 너무 놀랐다고 한다. 요즘은 한국에도 자원봉사자들이 낮 동안 치매 환자를 돌봐주는 복지관이 있다고 한다. 어느날 사위가 아침에 복지관에 모시고 가는데 손을 갑자기 잡으시며 “여보, 우리 손잡고 갑시다”라고 해서 사위도 그러자고 했다 한다. 그런데 어쩌다 정신이 드시면 “자네, 어디 아픈가, 왜 내 손을 잡는가”라고 하셔서 그냥 웃고 만다고 했다.
가끔은 복지관을 아르바이트 하는 곳으로 생각하시는지 언제 월급을 주냐고 게속 물으신다고 딸이 “엄마, 점심 저녁 드리고 놀다 가시는데 월급 주는 직장은 없지?” 하면 “없지, 알았다”고 하시고는 돌아서며 또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고 했다.
딸은 가끔 엄마가 남편을 집에서도 “여보”라고 불러서, “엄마, 저 사람은 내 남편이지 절대 엄마 남편 아니거든” 하면 아무 말 없이 사위만 한참 쳐다보신다고 했다.
어떤 이는 그곳이 자기 집이 아니라고, 또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를 만난다고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가시는 사람도 있으니 이 때는 항상 집 주소와 연락처를 팔찌나 이름표라도 만들어 몸에 지니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심한 경우는 식구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매일 만나는 사람인데 기억이 안 나서 “처음 뵙겠습니다”만 되풀이하기도 한다. 금방 식사가 끝났는데도 밥 달라고 하며 “너희들만 먹고 나는 굶기느냐”고 우시는 분도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들리러 온 할아버지가 딸집에 사는 치매 걸린 안사돈을 보고 딸도 환자도 보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며 안사돈을 살해하고 자기도 자살한 사건은 한 사람의 치매가 모든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케 하는 슬픈 이야기였다. 아직까지 치매의 완치는 어렵지만 조기 발견해 약물치료, 수술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이 본다.
오래 전 어른들이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아들 키우는 엄마는 도둑놈보고 욕하지 말고, 딸 키우는 엄마는 화냥년보고 욕하지 말라”고. 이제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 언젠가는 늙어가고, 부모님들이 있는 한 무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나는 항상 젊어 있을 것 같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총명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인가 천덕꾸러기가 되어감은 오래 가슴 밑바닥에 남아 슬픔이 된다.
이혜란/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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