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선‘듣는 자’가 돼야

2001-02-0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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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위기에 처하거나 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인다. 그때 자신의 고민을 진정으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문제로부터 탈출할 실마리를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는 사람은 자기를 폭넓게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상대방의 눈과 마음을 통해 굳게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문제를 털어놓게 된다. 이는 말하는 사람(speaker)이 들어주는 사람(listener)을 통하여‘자기 거울’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자기중심적 생각과 감정 때문에 혼란의 늪에 빠지거나 문제를 왜곡했던 것을‘자기 거울’에 비춰 보는 과정을 통해 사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들어주는 일’이란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싸움 후 친구에게 하는 하소연을 예로 들어보자.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가끔 고개를 끄떡이거나“그랬구나...”“나도 네 심정 충분히 알 것 같애...”라며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면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자기 생각들을 털어놓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저절로 정리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아가서는 “어찌 보면 그 사람에게도 장점이 많아”“내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남편이 화나고 불편했을 거야”라는 말도 하게 된다.

결국 현재의 미움 때문에 감추어져 있던 남편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떠올리게 되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게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너를 이해하고 인정(recognition)한다’는 수용(acceptance)의 태도이다. 즉, 상대방의 얘기에 참견하지 않거나 그냥 침묵만 지키는 것 이상을 의미하며 상대방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공감(sympathy)해 주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내·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조력하는 카운슬러들은 상담 의뢰인(clients)을 인터뷰할 때 이 같은‘청취 기법’을 원용한다. 의뢰인들은“말은 주로 내가 했고 카운슬러는 시종 듣기만 했어”“내가 나쁘게 생각했던 점이나 험담을 늘어놨는데도 카운슬러는 일체 비난이나 비판을 하지 않았어”“처음엔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았는데 1시간동안 줄곧 떠들었지. 이제 속이 후련한 것 같애”라고 종종 말한다.

그러나 카운슬러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실제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전달했다. 즉‘이해(understanding)와 공감(sympathy)’이 그의 태도에 내포된 것이다.

이런 기술은 부모-자녀간의 대화에서도 필요하다. 자녀들이 이성문제, 친구문제, 성적과 진로문제 등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도록‘마음의 문을 여는 대화’를 진정 바란다면 부모들은 우선 자녀를 질책하거나 자신의 생각으로 성급하게 판단하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먼저‘들어주는 입장’을 취해야한다.

화가이면서 20세기 대시인이었던 칼릴 지브란은“부모는 자녀에게 사랑만 건네주고 부모자신의 생각들은 거두라”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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