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뱀의 지혜

2001-02-07 (수) 12:00:00
크게 작게
새로운 세기의 첫 달이 벌써 지났다. 송구영신 모임에 정신없이 쫓아다니고 오색 불꽃놀이가 스페이스 니들 위 밤하늘을 요란스럽게 수놓으며 새 천년의 도래를 경축한 것이 바로 어제 일 같다.

해가 바뀐 뒤 미국인들은 새 대통령과 첫 흑인 국무장관을 맞아드리는 등 이미 엄청난 역사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러나 우리 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작년에 일어난 일들일 뿐이다. (음력)설이 지난 지 이제 겨우 보름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양력으로나 음력으로나 해는 바뀌었다. 2001년이라는 연호가 생소하지 않게 됐다. 지난 한 세기의 충격을 딛고 새로운 미지의 한 세기를 맞는, 그래서 20세기와 21세기를 두루 경험하는 제 3 밀레니엄의 주인공들이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갈 21세기의 모습을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아는‘21세기 사전’에서 “찬란하고 끔찍하고, 환희에 차 있고 야만스럽고, 행복하고 기상천외하고, 도저히 살수 없으면서도 인간을 해방시키고, 종교적이면서도 종교 중립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마디로 아리송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 같다.

한편, 우리가 살아온 지난 20세기는‘극단의 시대’(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학살과 전쟁의 세기’(프랑스 생태학자 르네 뒤몽),‘인류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기’(노벨상 수상 영국작가 윌리엄 골딩),‘가장 큰 과학 진보의 세기’(스페인 세베로 오초아) 등으로 규정된다. 이를 요약하면 상상을 초월한 해프닝으로 점철된 한 세기였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한인들이 대부분 체험한 역사이기도 하다.

2001년은 단기 4334년이며 신사년‘뱀띠’해다. 10간 12지에서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뱀은 열두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발이 없다. 뱀보다 한해 먼저인 용은 전설 속의 동물이지만 발이 있다. 성경은 뱀이 하와에게 금단의 열매를 따먹도록 유혹한 사탄이며 하나님이 그 벌로 평생 땅을 기어다니며 흙을 먹도록 응징했다고 가르친다. 불교도 뱀을 애욕과 유혹의 화신으로 배척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속신앙엔 뱀(구렁이)이 오래 묵으면 용이 되고 집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나온다. 뱀은 주위환경에 따라 체온이 오르내리는 변온동물이며 몇 주 동안 먹지 않아도 몸이 쇠하지 않는다. 뱀은 모두 281종이 있고 평균 수명은 11년이라고 한다. 징그럽고 단순한 생김새와 달리 매사를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게 처리하며 지진을 예감하는 영악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뱀 꿈도 임신·계약·권력·지혜 등 좋은 일들을 예고한다. 꿈에 뱀이 칼을 물고 있으면 권력과 명예를 얻게되고, 뱀을 만지면 부자가 되고, 뱀이 머리를 쳐들고 오면 귀한 자식을 낳게 되고, 여자 몸에 구렁이가 감기면 훌륭한 배필을 얻거나 아기를 잉태한다고 해몽가들은 설명한다.

우리 앞에 펼쳐진 가늠할 수 없는 새해와 새 천년을 헤쳐나가자면 뱀의 슬기가 필요하다. 보기보다 깨끗한 뱀,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뱀에서 교훈을 얻자. 멀리보고, 신중하게 처신하고,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이민의 꿈을 성취하자. 발 없이도 말이나 개보다 먼저 도착한 뱀의 스피드를 본받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