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 놓친 손, 챔피언 주먹돼

2000-06-2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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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입양 여성 김 메서, 8월 5일 서울서 세계 타이틀 도전

전설적 철권들인 알리, 포먼, 프레이저의 딸들이 프로 복싱에 입문하면서 여자 권투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들보다 체격이 왜소한 시애틀의 한인 여성이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 메서씨. 현재 커클랜드에 거주하는 메서씨는 5살때인 1971년 서울역전에 버려져 홀트를 통해 오리건주 실버턴의 존·맬리스 샌포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메서씨는“한국 이름이 백기순 인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아마 정확할 것”이라며 이제는 생모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메서씨는 18세가 되던 해 한국을 방문, 자신의 출생기록을 열람할 수 있었으나 그만뒀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자신을 버린 부모와 조국에 대해 원망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결혼을 통한 삶의 안정을 이루자 핏줄이 자신을 끌어당김을 느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 것.


그녀는 8월 5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 날, 그녀는 자신을 버린 조국 대한민국을 다시 방문한다. 버려진 아이가 아닌 당당한 세계 일류 복서로서 금의환향한다. 메서씨는“반드시 이기겠다. 이번에는 마치 홈 경기를 하는 듯 기분이 아주 편안하다”고 말했다.

메서씨의 원래 전공은 킥복싱. 세계 챔피언을 세 차례나 지낸 베테런답게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지만 매 경기가 자신에게는 원정 경기였다. 그녀는“서울 타이틀전에서는 당연히 모든 관객이 나를 응원하겠죠?”라며 웃었다.
메서씨의 권투 입문은 특이하다. 그녀는 자신의 대학 태권도 과목의 강사였던 남편 마크씨와 사제지간으로 만나, 1989년 결혼과 함께 마크는 권투를, 김은 킥복싱을 시작했다. 세계 정상에 3번이나 오르자 그녀는 권투로 전업했다.

‘권투선수’메서씨의 데뷔전은 곧바로 세계 타이틀 매치였다. 타이틀전에 나서는 동료의 연습상대로 링에 올라갔다가 상대를 흠씬 두들긴 것. 결국 도전자가 변경되고, 메서는 1995년 6월 10일 독일로 날아가 세계 타이틀전을 벌였다. 상대는 독일의 우상 레지나 할미쉬. 데뷔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경기를 벌였으나 2:1로 판정패했다. 홈 텃세로 데뷔전 챔피언 등극이라는 기록을 놓친 것. 메서는“ 내가 이긴 경기였다. 홈 텃세가 그렇게 큰지 몰랐다. 그래서 한국전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낳아준 조국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도 기쁘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메서씨에게 상당한 대전료가 주어진다. 미국에서의 대전료는 몇 천 달러에 지나지 않지만 이번엔 그 몇 배를 거머쥐게 된다. 물론 챔피언에 등극하면 몸값은 더 뛰게 된다. 특히 언론사로부터 인터뷰가 쇄도하고 광고 스폰서가 나서는 등 과외 수입이 늘게될 것이라며 희색이다.

이번 한국전에서 그녀의 목표는 챔피언을 따는 것 외에 한가지가 더 있다. 어머니 얼굴을 한 번 보는 것이다.챔피언은 자신의 주먹으로 딸 수 있으나 어머니 얼굴은 천운이 닿아야 볼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어머니를 만나보는 순간 한국말로 인사드리고 싶어 메서씨는 샌드백을 두드리며 오늘도 열심히 모국어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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