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품’과 ‘캐릭터’

2000-06-2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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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의 폐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만연해 있는 개성의 상실과 인품의 마손 현상일 것이다. 배금사상은 황금 제일주의를 불러들이고 많은 경우 삶의 우선 순위에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인품’에 합당한 영어 단어는 ‘character’이겠고 그 어원은 그리스어인 ‘kharakter’라고 한다. 우리말 사전은 인품을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개인"으로 규정하고 있어 다소 모호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character’의 의미는 "개개인을 형성하고 표현해 주는 장점과 약점의 총체," 즉 어느 한 시점에서의 말 한마디나 행동 한가지 등, 단일 언동에 의한 단편적 평가가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복합언동(좋은 의미든, 궂은 의미든)의 관찰 결과를 뜻한다. 따라서 아리스토 텔레스의 명언대로 "We are what we repeatedly do"와 부합함을 볼 수 있다.

인품을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오늘날 흔히 쓰이는 의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인품의 현대적 뜻은 긍정적인 덕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품을 갖춘 인물’이라고 말했을 때 이는 우리들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즉 인품(혹은 인격)이란 용기, 신념, 그리고 원칙에 준한 행동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가치관이 뚜렷이 부여돼 있다.


그러나 인품 혹은 ‘character’의 본뜻이 호불호간에 습관성 언동을 뜻한다고 하면 게으름 피우는 행위도 부지런한 행위나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character’임에 틀림없다. 막나니 인품도 고귀한 인품이나 마찬가지로 인품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한다면 인품이란 가치판단을 초월한 개념인 것이다.

인품의 형성시기는 언제인가? 가장 보편적인 견해는 유아기라고 보는 쪽이다. 부모가 자녀의 인격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남을 도울 것, 거짓말 하지 말 것, 참을 줄 알 것 등의 기본 가치관을 어렸을 때 머리 속에 확고히 넣어주면 된다. 그 다음은 그 바탕 위에서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유로든, 바람직한 기본 가치관을 부모로부터 전수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장일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인품이 변하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겪어왔다. 인품이 점점 나아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점점 나빠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준의 선택과 덕의 실천 여부에 의해서 인품이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도 있다는 견해는 어떤가? 선택이 인품을 개발하며 인품은 선택을 결정한다는 경험론적 논거의 타당성은 어느 만큼인가?

’Character’를 논하면서 뺄 수 없는 요소 하나가 종교다. ‘Character’ 개발에 미치는 종교의 역할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도덕적 이상이나 도덕성 구현을 위해 반드시 종교적일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정의 실현의 구심점은 여러가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인품형성에서 맡는 역할을 논할 때에는 단순한 지식 또는 기술 전수에 그치지 않고 포괄적이며 궁극적 목표 가운데 하나인 공동선을 실천하려는 의지 배양임을 기억해야 된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격을 잃은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는 세계사의 비극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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