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시장을 꿈꾸는 자·시정을 책임질 자
2026-05-21 (목) 12:00:00
송종호 서울경제 정치부 차장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학기 초 반장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기를 은근히 바란 적이 있다. 리더십을 길러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 반장은 당번의 다른 말이에요”라며 불출마하겠다고 했다. 반 학생들을 대표한 화려한 아이의 모습만 떠올린 아버지로서는 머리가 쿵 했다. 귀찮고 피하고 싶은 당번처럼 학업 외에 ‘가욋일’을 하는 게 ‘반장’이라는 사실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아이와 비슷한 나이에 봤던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 소설 원작)’ 속 급장 엄석대는 늘 반장의 이미지였다. 엄석대는 선생님을 대신해 아이들 위에 군림했다. 청소 감독부터 시험 부정까지 권력을 누리고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반장’은 책임보다 권한을 가진 권력으로 학습돼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의 말이 더 부끄러웠다.
지방선거가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다. 광역단체장 16명, 기초단체장 227명, 광역(933명) 및 기초의원(3035명)에 재보선이 치러지는 국회의원 14명을 비롯해 16명의 교육감까지 포함하면 4000명이 넘는 국민 대표들을 선출하게 된다. 등록된 후보자들을 보니 최근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야망’을 지적하며 인용한 영국 철학자 A C 그레일링의 발언이 떠올랐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시장이 되고 싶다’는 말과 ‘시정을 하고 싶다’는 말이 다르다는 식으로 치환할 만하다.
시장·군수·의원이 된다는 것은 화려한 권력만 뜻하지 않는다. 욕먹을 각오로 민원을 처리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예산서를 붙들고 씨름하는 지루한 노동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거마다 생활 밀착형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한 정치 공세와 중앙 정치인의 이름이 넘쳐난다. 새로운 ‘엄석대’가 되기 위한 경쟁으로 비치는 게 현실이다.
정치를 화려한 권력으로 봐서는 안 된다. 후보자마다 시장이라는 지위에 오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시정 일을 해내고 싶은 것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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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호 서울경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