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스타벅스의 만행
2026-05-21 (목) 12:00:00
이영태 한국일보 논설위원
2019년 무신사의 양말 광고가 공분을 샀다. 빨리 건조가 된다며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카피를 썼다.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끝에 사망한 고(故)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양말 홍보에 소비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했다. 역사의식 부재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 아픈 역사를 희화화하는 마케팅은 해외에서도 종종 논란이 된다. 미국 텍사스 한 매트리스 판매점은 2016년 직원들이 두 개의 매트리스 탑을 무너뜨린 뒤 “우리는 절대 잊지 않겠다(We’ll never forget)”고 외치는 9·11 테러 패러디 영상을 올렸다가 폐점했다. 펩시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한창이던 2017년 경찰관에게 콜라를 건네자 시위 참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광고로 뭇매를 맞았고, 의류 브랜드 자라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입던 옷을 연상시키는 아동복을 내놓았다가 판매를 중단했다.
■ 이번에는 한국 스타벅스다. 18일 텀블러 프로모션 행사명을 ‘탱크 데이’로 정하고 ‘5/18’이란 날짜와 무신사가 논란을 빚었던 ‘책상에 탁!’이란 문구를 넣은 게시물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날은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 누가 봐도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시내 탱크 진압과 87년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마케팅 차용이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저열한 광고다. 오죽했으면 이재명 대통령이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고 했을까.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경질했다. 19일 사과문도 직접 냈다. 이 정도로 덮을 사안이 아니다. 이런 황당한 마케팅이 굴지의 대기업에서 아무런 제지 없이 실행된 걸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렵다. 정 회장의 과거 ‘멸공’ 발언까지 소환된다. 정말 기업 정치색이 반영된 광고라면 역사와 국민, 소비자에 대한 만행이다. 불매운동 조짐이 일고 있단다.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으면, 금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콧대 높은 영업을 할 것이다. 쿠팡도 이탈 고객 80%가 돌아왔다며 의기양양한 마당이다.
<이영태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