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적 닭맛 보여준 야키토리… 냉철한 눈으로 ‘살아남을 맛’ 찾았다

2026-05-20 (수) 12:00:00 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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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야키토리 묵, 장미시장국밥 김병묵 셰프

한국적 닭맛 보여준 야키토리… 냉철한 눈으로 ‘살아남을 맛’ 찾았다

야키토리 묵에서 판매하는 메뉴들. [김병묵 셰프 제공]

한국적 닭맛 보여준 야키토리… 냉철한 눈으로 ‘살아남을 맛’ 찾았다

병묵 셰프가 야키토리 묵에서 꼬치를 굽고 있다. [장준우 제공]


셰프의 세계도 여러 결이 있다. 접시 위에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투사하며 미학을 좇는 아티스트형 셰프가 있는가 하면, 외식업의 본질을 꿰뚫고 고객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전략가형 셰프도 있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야키토리왕’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병묵 셰프는 명확히 후자에 속한다. 자욱한 연기와 거친 불길 속에서 묵묵히 꼬치를 굽는 그의 모습 너머엔 냉철한 시장 분석과 데이터로 설계된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이 숨어 있음을 눈치채는 이는 많지 않다.

일반적인 요리의 길을 걷지 않은 그는 스스로를 ‘근본 없는 요리사’라 부른다. 하지만 그 ‘근본 없음’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관습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외식업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 강력한 무기가 됐다. 요리에 대한 낭만이나 거창한 꿈을 좇는 대신 그는 숫자가 말해주는 진실과 손님이 느끼는 실질적인 만족도에 집중한다. 그는 숯불의 온도를 가늠하기 전, 엑셀 시트 위에 촘촘하게 박힌 소비자들의 욕망을 숫자로 읽어내는 법부터 배웠다.

토종닭으로 승부한 야키토리


김 셰프의 시작은 주방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고객 만족도를 분석하던 그는 29세에 돌연 사표를 던졌다. 엉덩이를 붙이고 모니터 속 숫자와 씨름하는 삶보다는, 몸을 움직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직의 삶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요리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식당을 같이 하자는 지인의 제안에 캐주얼 프렌치 레스토랑 오픈 멤버로 참여하면서부터 그의 요리 인생은 시작됐다.

서양 요리의 문법을 익히고 테크닉을 연마할수록 가슴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끓이는 김치찌개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은 서양 요리의 아류밖에 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가장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통계학 전공자답게 그는 시장을 분석했다. 그가 보기에 양식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간극이 너무 컸던 반면 한식과 일식은 꾸준히 수요가 있었다. 마땅히 한식을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없어 대신 일식을 교육하는 나카무라 아카데미를 택했다. 졸업을 앞둔 그는 대중에게 친숙하면서도 자신의 강점인 닭 손질 기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를 찾아냈다. 바로 야키토리였다.

2018년 오픈한 '야키토리 묵'이 2021년 미슐랭 가이드의 빕 구르망에 선정된 것을 두고 그는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여행객들에게 그 지역의 특색 있는 맛을 소개하는 매체의 특성상, 당시 흔치 않았던 토종닭을 활용한 야키토리가 눈에 띄었을 뿐이라는 겸손이다. 하지만 순전히 운만은 아니었다.

당시 국내 야키토리 전문점들은 대부분 수입산이나 일반 육계를 사용했다. 김 셰프는 한국의 재료인 토종닭이 가진 단단한 육질과 깊은 풍미가 숯불과 만났을 때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간파했다. “일본보다 더 일본스러운 야키토리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닭맛을 보여주는 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차별화 전략이란 생각이었죠.” 위기에 강한 식재료를 선택하고 그 식재료에 한국적인 정체성을 입힌 그의 전략은 정확히 적중했다. 현재 야키토리 묵은 본점인 연남점뿐만 아니라 신사동, 여의도에도 분점을 내며 성업 중이다.

김 셰프의 요리 지론 중 흥미로운 지점은 ‘맛’에 대한 정의다. 그는 맛이 단순히 식재료의 질이나 조리 기술에만 머물러 있다고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맛있다는 표현을 뭉뚱그려 쓰지만 사실 그 안에는 수만 가지 데이터가 섞여 있죠.” 그는 맛을 철저히 해부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간이 맞는가, 질감이 좋은가, 향이 풍부한가를 따지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가격, 속도, 공간의 무드까지 점수를 매긴다. 고객이 지불한 비용 대비 얻어가는 총체적인 경험의 점수가 높을 때, 고객은 비로소 ‘맛있다’는 최종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단순히 맛있게만 하는 데 천착하지 않고 어떻게 고객이 만족하고 잘 팔릴지를 함께 고민한다. 요리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생계와 직원들을 책임지는 경영자이기에 갖춰야 하는 사고다.
한국적 닭맛 보여준 야키토리… 냉철한 눈으로 ‘살아남을 맛’ 찾았다

유자된장을 곁들인 차가운 닭가슴살 롤. [김병묵 셰프 제공]


시장에서 생존할 요리를 찾아서

그의 분석적 유연함은 팬데믹 위기 앞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밤의 술 문화에 집중된 야키토리만으로는 사업적 한계가 있음을 직감한 그는 낮의 허기를 채우는 국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야키토리가 특별한 날의 행복을 주는 비타민이라면, 국밥은 매일의 배를 채워주는 식량에 가깝죠. 식량은 반복성이 높아야 하고 빠르면서도 직관적인 만족감을 줘야 합니다.”


그는 국밥을 설계할 때도 시장의 수급 상황을 먼저 읽었다. 팬데믹 시기 한우 구이 부위의 수요가 폭증하며 도축 수가 늘어나자,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한우 국거리(잡육)에 주목했다. 그렇게 그는 장미상가에 장미시장국밥을 열고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한우가 가득 담긴 국밥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김병묵 셰프는 스스로를 ‘생태계를 만드는 요리사’라 정의한다. 그가 지향하는 지점은 홀로 만개하는 식당이 아니다. 좋은 식재료가 선순환되고, 유능한 후배들이 필드로 끊임없이 배출되는 단단한 토양을 꿈꾼다. 막연한 동경으로 자기 요리를 하겠다며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그가 던지는 질문은 늘 같다. “너의 목표가 무엇이냐?” 요리는 비즈니스를 위한 수단이며, 수익이 뒷받침되지 않는 맛은 지속될 수 없다는 그의 일갈은 차갑고도 현실적이다. 정글 같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근육을 먼저 키워주려는 이 고집 덕분에, ‘야키토리 묵’은 업계에서 수많은 독립 셰프를 배출한 ‘야키토리 사관학교’로 통한다.

“요리는 소비자가 완성하는 것”

요리가 완성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많은 이들이 셰프가 핀셋으로 접시 위에 마지막 터치를 할 때를 상상하지만, 김 셰프의 생각은 다르다. “요리는 소비자가 음식을 먹고 기꺼이 값을 지불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는 오너셰프라면 접시 위의 아트보다 재무제표를 아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 요리는 지속될 수 없고, 지속되지 않는 요리는 미학적 가치마저 상실하기 때문이다. 공급자의 예술적 고집보다 소비자의 지불 가치를 우선시하는 그의 철학은 명확하다. “짜장면을 먹고 싶은 사람에게 최고의 짬뽕을 내주는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은, 셰프가 빠지기 쉬운 자기만족의 함정을 정확히 관통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표류하는 이들에게, 그는 발은 땅에 단단히 딛되 고개는 들어 앞을 보라고 단호하게 조언한다. 요리의 낭만은 탄탄한 현실의 기반 위에서만 비로소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김 셰프의 시선은 이제 자신의 주방을 넘어 닭이 자라는 양계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한국 닭 요리의 한계가 ‘품종’이 아닌 ‘생육 환경’에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의 프리미엄 닭 사육 방식을 한국에 도입해, 기술 이전을 통한 새로운 계육 생태계를 만들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일본의 프리미엄 닭인 ‘히나이 지도리’ 같은 수준의 닭을 한국에서도 키워내고 싶습니다. 사육 방식과 사료를 조절해 육향과 식감을 극대화하는 거죠. 이런 시도는 한국 야키토리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 될 겁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사업을 설계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음식을 대하는 그를 보며 자신만의 식당을 운영하는 오너셰프가 가져야 할 가장 현실적인 지향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다음 행보가 한국의 양계 농가까지 뒤흔들 날을 기대해본다.

<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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