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좀 달라야 하고, 예전 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은 지난 성탄 때도 마찬가지였다. ‘봉사하는 자리’라는 타이틀은 무겁게 다가왔고, 전례의 하나에서 열까지 온통 마음이 갔다. 재의 수요일을 지내고 사순절을 시작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노침초사 하며 성가와 독서자와 해설자, 복사들까지도 일일이 확인이 필요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주님은 아실까? 매일 미사 책과 예전에 했던 전례 예식서와 성가 집 등을 꺼내 들추어 본다. 혼자,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리허설. 올 해는, 더 잘해야하는데…
미리 챙기고 준비를 하고, 전례봉사를 하는 분들과 입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온전히 나의 생각일 뿐. 늘 하던대로 하면 되지, 뭘 그렇게 까지? 하는 시선은 아주 가깝게 있었다. 특송 연습을 하고 , 해설 할 부부들을 큰 소리 내어 읽으며, 세세한 부분까지 혼자 말을 해보는 나. 소심한? 혹은 필요 이상으로 세심한 성격 탓일까?
성삼일. 성 목요일 저녁 미사에서는 성체성사의 신비와 사랑의 계명을 묵상 함과 동시에,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공동체의 실천을 몸소 보이는 예절인 일을 본받는 세족례를 시행한다. 겸손과 섬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새기는 저녁.
성 금요일 오후에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사건을 기억하며 묵상 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로 주님의 수난을 묵상한다. 비탄의 노래가 반주도 없이 이어지고, 그야말로 장엄하게 전례가 이어진다. 이 장엄함 속에서, “예수님의 수난 앞에서 나는 어떤 신앙인인가? 어떤 사람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어떤 분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부활성야인 토요일 저녁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예절을 거행한다. 교회력 안에서 일년 내내 사용될 부활초를 축성하고 빛의 예식을 거행한다.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태우며 누구에겐가 불꽃이 될 수 있었던가, 통열한 반성도 함께 따른다.
부활 주일, 돌아가시고 묻히신지 사흘만에 부활 하신 예수님의 모습에 기뻐 환호하는 우리들을 만날 수 있다. 성대한 예식 안에서 진심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기뻐한다.
사순절 내내 묵상의 화두는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 봉사직을 수락했고, 과연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지? ‘였다. 세상의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지난 몇 달을 지낸 것은 아닌지? 강박 관념 속 삶의 모습들 속에서 기도는 줄어 들고, 말씀은 점점 멀어지고, 신앙은 점점 불편함이 된건 아닌지?
성주간을 지내며 “너는 누구인가?” 물으셨던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잎이 된다. 바람에 떨어질까 봐 안간힘을 쓰며 가지에 매달려 멀리, 봄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르름 위로 흔들리는 모습은 작고 여리기만 하다. 그 작은 흔들림 속에서도 온몸으로 따스함을 느낀다. 작은 미물의 세속적인 노력조차도 그분 보시기에 나쁘기 않았으면… 온화한 음성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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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