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자녀가 이민자 부모께 드리는 위로와 부탁
2026-04-24 (금) 06:09:27
전하영 애쉬번, VA
올해 초 방영된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를 보며 마음에 깊이 와닿는 대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고 하셨죠. 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거 같아요.” 극 중 유능한 다중언어 통역사인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마음을 읽어내는 데 한계를 느끼며 내뱉은 고백이다. 같은 언어를 쓴다 해도 사랑을 주고받는 소통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장면이다.
이 모습은 어릴 때 이민 온 우리 1.5세대와 1세대 부모님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서로 깊이 사랑함에도 문화와 가치관의 격차 때문에 진심이 어긋나는 우리네 모습 말이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서야 부모님의 마음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다. 오는 5월 첫돌을 맞이하는 딸을 생각하면 벌써 별의별 걱정에 기도가 절로 나온다. 어린 시절 ‘간섭’이라 느꼈던 것들이 실은 세상으로부터 자녀를 지키려던 부모님의 ‘보호’였음을, 그리고 잔소리로 들렸던 조언들 역시 당신들의 시행착오를 자식만큼은 피하길 바라는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이젠 안다.
하지만 한국의 공동체 문화에서 자란 부모 세대와 미국의 개인적 독립성을 배우며 자란 자녀 세대 사이에는 더 섬세한 ‘통역’이 필요하다. 각자의 사랑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 사랑이 깊고 크다고 할지라도 진심이 전달되지 못해 관계는 어긋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민자들의 아픔을 기독교 신앙의 시선으로 다룬 저서
를 집필하며 수많은 이민자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사랑의 언어가 엇갈려 가족 관계가 틀어지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마주했다.
1.5세대 자녀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늘 부모님을 향한 ‘감사’가 있다. 낯선 땅에서 언어의 장벽과 때론 불공정한 대우를 견디며 오직 자식을 위해 다시 한 발짝을 내디뎠던 부모님의 뒷모습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사 곁에는 ‘죄책감’도 늘 공존한다. ‘우리 때문에’ 희생한 부모님을 보며 그 대가를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때론 감당하기 벅찬 무게로 다가온다. 우리 1.5세들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부모님께서 그저 믿고 ‘존중’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선택이 부모님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그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 땅에서 당당하게 맺을 수 있었던 ‘열매’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나아가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본인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시길 응원한다. 부모님이 행복할 때 비로소 자녀들도 마음의 짐을 덜고, 가족 관계도 더 건강한 균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오직 자식만을 바라보며 달려오신 모든 부모님께 “그동안 너무나 고생하셨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 ‘사랑의 통역기’를 함께 돌려보기를 제안한다. 부모님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자녀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 1.5세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많은 1.5세대에게 부모님께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인정’이었다. “그땐 살기 바빠서 몰랐는데, 너희도 참 힘들었겠구나. 고생했다 내 딸아, 내 아들아.” 어릴 적부터 부모님 대신 은행과 병원 등의 업무를 도맡고, 우리 또한 낯선 문화에 적응하려 고군분투했던 우리 1.5세대에게 이 한마디는 큰 위로이자 세상을 살아갈 ‘인생의 자원’이 된다. 어른이 된 자녀들도 이 따뜻한 인정을 갈망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에게도 여전히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처럼, 이번 가정의 달에는 우리 이민 세대가 서로의 다름과 아픔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어 주길 소원한다. 그로 인해 가정마다 진정한 ‘사랑의 통역’이 시작되는 소중한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전하영 애쉬번,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