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만의 섬 -The World Is Flat, Revisited

2026-04-24 (금) 06:08:54 최규용 메릴랜드대학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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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평평하다 - 21세기의 간략한 역사’는 작가이며 기자인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L. Friedman)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화(Globalization)의 미래에 대하여 2005년에 쓴 책으로 15주 연속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 당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세계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는 그의 분석과 예측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리드만이 이 책을 썼을 때는 바야흐로 인터넷이 가정마다, 직장마다, 또 사회 곳곳에 연결되고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보급되어 이동통신과 정보의 흐름이 디지털의 형태로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한 것은 인터넷과 정보 통신의 발달은 나라와 나라, 개인과 개인간의 지식과 정보 취득 및 이용의 벽을 낮추고, 이로 인해 산업과 경제의 세계화가 가속될 것이며 미국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온 지 불과 20년이 지난 지금의 세상을 되돌아보면, 인터넷도 인터넷이지만 스마트폰의 발명과 보급은 프리드만이 예상하지 못한 범세계적인 정보통신의 혁명을 가져왔다. 여기에 AI라 불리는 인공지능이 가세하고 있어 인류 사회는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프리드만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인류 문명 전반의 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예언대로 이 세상이 평평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오히려 그 평평함이 더 왜곡되어 높은 산과 낮은 평야의 차이가 더 커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평평한 세계’는 그 안에 사는 인간들에게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해 주었지만, 이와 함께 새로운 갈등을 겪게 해주었고, 이는 빠른 속도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정보통신,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21세기 문명은 ‘지식 독점화의 몰락’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특히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제 일찍이 보지못한 새로운 지식 공유의 미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개의 상업용 AI의 등장으로 이제 어떤 정보나 지식이든 스마트폰을 통하여 순식간에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산업, 의료, 경제 등 이제 AI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곳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지식의 ‘공유화共有化’는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이나 AI를 검색하면 곧바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는 놀라운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 수 년 내에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변화가 오게될 것임은 자명한데, 다만 그러한 불확실적인 변화가 가져올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이와 같은 기술의 혁명적인 변화와 보편화는 역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최소화하거나 불필요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강의를 듣고 있다가 곧바로 스마트폰을 열고 검색해 보면 강의 내용이 옳은지 틀린지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강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나의 경우에도 예전보다 강의 내용에 더 신경 쓰고 긴장하게 된다.

이처럼 이제는 웬만한 궁금증이나 문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혼자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되니, 어쩌면 ‘세상이 평평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각자 만의 고립된 섬으로 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망망대해에 인간의 숫자만큼 떠 있는 수많은 작은 섬들. 그 섬에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불빛만 바라보며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 하고 다른 섬에 사는 사람과의 대화나 소통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별로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너만큼의 지식을 가질 수 있어!’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식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이제 지식의 유무有無, 다과多寡 보다는 지식과 통찰이 창조적으로 융합된 지혜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지식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토마스 프리드만은 평평한 세계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바다에 잠기면서 전세계 인류의 인구 수만큼 수십억 개의 섬으로 되어 모두가 절연(Insulation)되는 세상을 예측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자연에서도 다니기 힘든 산악지대보다는 평평한 평지가 걷기에는 쉽지만 홍수가 날 때 물에 잠기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이자 파도로 물결치는 소음이 끊이지 않는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은 고립되어 있지만 사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섬을 피하거나 없앨 수는 없다면, 이제 우리의 과제는 점점 많아지고 고립되어 가는 섬과 섬 사이에 어떻게 무슨 다리를 놓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얼마 전 병원의 검사 결과를 AI에게 입력하여 내가 환자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물어보니 나름대로 상세하게 답을 해 주면서도, 맨 마지막에는 ‘당신의 전문의에게 물어보고 치료 안내를 받으세요.’라고 대답했다. 인간과의 가치있는 관계는 단순한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공감 능력에 바탕을 둔 정서의 교환이라면, AI도 결국 나만의 섬에서만은 살아갈 수 없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규용 메릴랜드대학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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