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숱한 사람 중에 무슨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 이렇게 정을 주고받게 되었을까 싶어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는 보석처럼 소중하다. 주책을 부리든, 성질을 부리든 그저 이쁘게만 보인다. 서로의 마음 밭에 뿌려진 정이 세월만큼 숙성되고 발효되어 향기조차 뭉근해진 탓일까.
뒷마당 푸성귀가 싱싱하다며 리사 엄마가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꽁치통조림을 풀은 냄비에 호박 숭숭 썰어 넣은 걸쭉한 쌈된장, 상추와 풋고추, 감자국이 전부인 식탁에 세 쌍의 부부가 둘러앉았다. 겨우 이것 차려놓고 사람을 불렀냐며 앤디 엄마가 눈을 흘긴다. 고맙다. 하고 먹을 일이지 웬 잔소리냐며 리사 엄마가 쥐어박는 소리를 한다. 에헤이 맛만 좋구먼. 나도 한마디 거든다. 아웅다웅 긴 세월이 상 위에서 맛있게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40여 년째다. 팔랑거리며 걷는 큰아이 손을 잡고 갓 낳은 둘째를 유모차에 앉힌, 미국이란 낯선 곳에 짐을 푼 지 몇 년 안 된 이민초년병이었다. 어른들끼리도 아이들끼리도 좋은 친구였기에 한 집에 모이면 그야말로 난리였다. 테이블을 흔들어 꽃병을 깨고, 어디서 찾아내었는지 난데없는 망치를 들고 와 발등을 찧고 울던 아이들. 그 와중에서도 우리는 밤이 늦도록 도란거렸다.
그때는 사람이 그리웠다. 한국에 두고 온 것은 직장과 이력뿐이 아니었다. 방마다 전화기가 있었지만 벨을 울려주는 친구는 없었다. 한국에서 뽑혀져 온 뿌리가 이 땅의 흙을 움켜쥐고 온전히 몸을 세우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가 답답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영어가 서툴러 실수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더욱 깔깔거렸다.
첫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 한국말만 쓰던 아이에게 몇 마디 영어도 가르쳤다. “예스, 노, 오줌 마려워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로 옮기면서 몸과 맘이 자라듯 우리의 집도 아파트에서 하우스로, 좀 더 큰 주택으로 옮겨졌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되어 떠나고, 풍성하게 나풀대던 우리의 머리는 숭숭 벗겨지고 허얘졌다. 세월이 가며 몸은 윤기를 잃어 가는데 만나서 떠올리는 그때의 기억은 참으로 푸르고 싱싱하다.
밀란 쿤데라가 말했다. ‘친구란 우리의 거울, 우리의 기억’이라고. 구순을 넘긴 어머니는 친구들 생각에 자주 눈이 젖었다. 몇 명의 친구들은 이미 떠나고 그나마 남아있는 친구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나 누군지 알아?” 묻는 말에 빙긋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인다고 했다. 함께 엮었던 시간이 어머니의 기억에는 남아있는데 친구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다는 사실에, 수세미 같은 친구의 머리를 빗겨주며 눈물을 흘리시더니 기어이 당신도 떠나셨다.
우리도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앞으로 얼마를 더 함께 갈지 알 수 없지만 친구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서로의 거울이 되어, 마지막 그날까지 함께 갈 거다. 우리에게도 필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정적의 시간이 올 것이고, 끝까지 남은 한 사람은 희미해진 기억을 붙잡고 외로워하겠지.
리사 엄마가 남은 상추를 비닐 봉투에 담아 준다. 고마워. 우리는 유쾌한 웃음소리로 차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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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수필 평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