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진영을 뛰어넘는 보수주의

2026-04-16 (목) 12:00:00 조철환 한국일보 오피니언에디터
크게 작게
중국이 분열돼 극심한 혼란기에 빠진 시기를 꼽는다면 단연 ‘오대십국’ 시대다. 당(唐·618~907)이 멸망한 후 송(宋·960~1279)이 통일하기까지 반세기 넘는 기간이다. 황하 유역에 짧은 기간 후량·후당·후진·후한·후주의 다섯 왕조가 교체됐는데, 그 난세에 4대 왕조(후당~후주)에서 11명의 황제를 모시며 재상을 지낸 처세의 달인이 있었다. 당시에는 덕과 명성이 공맹에 비견될 정도로 높았던, 장락로(長樂老) 풍도(馮道)였다.

■풍도에 대한 후대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자치통감의 사마광은 “일신의 영예를 위해 주인을 갈아치운 간신배”로 낙인찍는다. 곽위가 후주를 세우자, 그때까지 후한 왕조를 섬겼던 풍도가 후한의 후계자 유빈을 곽위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는 “백성들이 고통을 벗어난 것은 그가 부양에 힘쓴 탓이다”라고 칭송한다. 후진에 침입한 거란 태종이 백성을 죽이려 하자 “저들을 살릴 분은 부처님도 아닌 폐하뿐”이라고 설득한 것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풍도 사례처럼 명분과 실리의 이분법으로는 세상의 옳고 그름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17세기 ‘명청(明淸) 교체기’ 광해군의 행보,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파병 등이 그렇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에서 임금을 체불한 한인 사업가에 대한 처벌을 촉구했을 때, 일부에서 “그 나라 정부에서 할 일을 왜 한국 대통령이 먼저 나서, 자국민을 위협하냐”는 비판도 있었다.

■정답 없는 논란이 또 던져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SNS 게시글이다. 대한민국 위상을 높였다는 환호,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과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도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메시지로 보이지만, 논란은 이어질 것 같다. 실용주의의 선구자, 네덜란드 상인의 복식부기에서 출발한 회계이론에는 미래 불확실성을 대하는 확립된 원칙이 있다. ‘비용은 많이, 수익은 되도록 적게’ 예상하려는 ‘보수주의’다. 논쟁이 이어지더라도, 국민 안전이 걸린 외교·안보에선 새로운 실험보다 최악을 대비하는 태세가 유지되길 기대한다.

<조철환 한국일보 오피니언에디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