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는 이야기] 불면고(不眠顧)

2026-02-20 (금) 07:34:06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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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에게 기자가 물었다. “당신도 사람이니 불면(不眠)의 밤을 지날 때가 있겠지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시나트라가 대답했다. “나이가 들면서 잠을 자기 어려울 때가 많지요. 그럴 때는 기도로 해결하고 때로는 수면제를 복용하고 때로는 술을 마십니다.”

사람마다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비슷하다지만 시나트라는 뭔가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나 싶었는데 그 역시 오십 보 백보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기도를 제일 먼저 꼽았다는 사실이다. 마이 웨이를 외친 가수가 잠이 안와 신을 찾았다니 신기하다.

나도 불면의 밤을 많이 보내는 편이다. 그렇다고 비관하지는 않는다. 노인들이라면 껴안고 있는 문제 중 가장 큰 특성이 잠에 관한 문제이고 나도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의사들의 말을 빌리면 노인들에게 수면제를 조제하는 경우가 전보다는 많아졌지만 그래도 약보다는 술로 해결하려는 분이 좀 더 많은 것 같다는 통계다. 수면제는 해롭다는 고정관념인 듯하지만 글쎄, 뭐가 나쁜지는 장담할 수 없다. 뭐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이고 개인차(差)일 터이니.

가끔이긴 하지만 나 역시 시나트라처럼 기도로 불면을 호소하는 시도가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불면에 매달리는 내가 조금 쩨쩨하지 않나하는 자괴감도 없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기도를 한 후 잠을 청하면 일단 마음이 편해지니 노인 제위(諸位)들에게 권하고는 싶다.

불면의 밤도 계절 따라 다르다. 아무래도 겨울밤이 더 길어서 여름보다 불면이 짙다. 잠을 못 이루고 침상에서 뒤척거리는 태면(怠眠)이 건강에 더 나쁘다는 말이 있어서 불면의 징후가 나타나면 차라리 일어나버린다.

일어나서 책이라도 본다든지 인터넷을 켜고 뉴스를 본다든지 하지만, 왠지 마음은 편치 않다. 그 시간에 자꾸 나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여다본다는 것은 긍정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언 듯 읽었는지 들었는지 분명치는 않은데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시가지(市街地)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기에 지금 내가 기억하겠지만 그 말에서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오지 않는가. 말이란 그만치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사람의 도시가 있다는 말, 그리고 그 도시를 내가 지배한다는 말.

시가지란 무엇인가. 말하자면 복잡한 거리를 뜻한다. 도시처럼, 건물이 들어차고 대로도 있고 골목도 있고 상가도 있고 주택도 있고, 신사숙녀도 있지만 건달 깡패 부랑자도 거니는 거리 풍경. 어쩌면 그 시가지가 끝나는 해변에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배경이 된 낡은 교각이 있을지.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인데 퍽 상징적이었던 비유였다. 그리고 그 마음속 시가지를 지배하며 사는 인간도 노인으로 가는 즈음에 이르면 그 시가지처럼 황량해지고 만다. 인적이 드문 폐허와 허물고 새로 건축되어야할 상가, 화려한 색감을 상실한 채 늘어선 노포(老鋪)들. 잔해처럼 패어진 페이브먼트.


그러나 전도서의 노인은 그리 허약하지만은 않다. 해아래 새것이 없음을 깨닫는 가슴을 어찌 허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시가지는 허물어야 마땅하고 그 허물어져가는 굉음에 잠을 못 이룬다하여 어찌 괴롭기만 할까.

불면은 반드시 부정적이지 않다. 온갖 사유(思惟)가 축적되는 창고를 아주 힘들게 관조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노인이라면 불면을 겁낼 필요는 없다. 불면을 이길 장치는 많지만, 그런 장치를 이용하지 않으려는 내 의지 때문에 괴로울 뿐이다.

아마 금년은 작년보다 훨씬 빠른 속도감으로 지나갈 것 같은 예감이다. 그래서 어김없이 찾아올 불면의 밤에 또 어떤 시가지를 목격할지 흥미롭다.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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