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는 이야기]사랑의 실천

2026-01-23 (금) 07:43:11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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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월이 가고 있다. 이렇게 한 해가 시작되고 흘러가는 즈음이 되면 날씨는 차가와도 마음은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금년 한 해의 삶은 보다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을 전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그렇다고 당장 무슨 사랑을 만들라는 독촉은 아니다.

묵었던 감정도 풀고 못 다한 사랑을 채우는 데 마음을 써보려는 생각이다. 이런 말을 하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오래전 이야기다. 95년도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고 막 비자금 사건으로 뒤숭숭할 때였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느 신문에 박스기사로 노태우대통령 미담 하나가 소개되었다. 내용은 노대통령이 재임하면서 몇 년째 소록도 나환자 시설에 매월 천 원씩 보냈다는 것이다. 미담을 소개하는 기사였지만 그 행간에는 대통령이 겨우 천원이냐는 비난도 섞여있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그 기사를 접하면서 대통령의 인간됨을 느꼈고 천원이라는 액수는 작았지만 매월 잊지 않고 사랑을 실천했다는 그 마음을 높이 사고 싶었다.


나는 천원도 내놓지 않았던 인색한 사람이 아닌가. 남이 베푸는 작은 자선과 사랑을 비난하고 우습게보기는 했어도 막상 나 자신은 사랑의 실천에 허약하지 않은가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후 내 시선도 자극을 받고 바뀌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사랑임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요즘엔 자선과 사랑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아졌다. 아마 나라의 부(富)가 많이 향상되기도 했고 사람의 가치기준도 높아진 덕분이다.

그러나 자선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경쟁적인 경우가 존재함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자선은 반드시 재력에 비례한다는 법도 없다. 사랑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이며 개인의 영역이다.

미국 부자 중에 우드 러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은 자선을 많이 행한 사람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그것도 쩨쩨한 소규모 자선이 아니라 손이 큰 사랑의 실천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무슨 날이 된다든지, 누군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라니까 알만하다. 저러다가 있는 재산이 거덜 나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분의 운전기사가 먼저 죽었는데 이런 유언을 남겼다. 자기가 일생 시중을 들었던 우드 러프에게 모든 재산의 상당부분을 넘겨준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가 말했다. “우드 러프회장은 곧 망할지 모른다. 너무 헤퍼서 머잖아 빈털터리가 될 것 같다. 그러니 큰돈은 아니지만 내 재산을 회장에게 주고 싶다.”

웃기는 실화지만 우드 러프는 망하지 않았고 심성까지 좋은 부자로 지금까지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자선가로 남아있다. 우리가 다 이런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새해의 삶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 경우 상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을 자선과 사랑으로 희사하는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들을 보면 저렇게 많은 돈을 척척 내놓고도 살만한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언제 저 나이에 그 많은 재산을 축적했는지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가수는 자선으로 유명한 인물인데 그동안 전한 사랑이 몇 십억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통장 잔고는 불과 2백만원 남짓이라니 이게 무슨 현상인가 의아스럽기는 하다.

아무튼 크게 소리 내지 않고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곳은 많다.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 유기견이나 유기묘들을 위한 시설, 선교단체나 홈리스를 위한 자선 등,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전과 달리 식당에서는 팁을 강제로 징수하는 듯해서 사랑의 대상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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