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 고] 대한민국 초기 해외이주 정책의 역사

2026-01-23 (금) 07:42:11 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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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 계신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장관(재임기간: 1999.5~2000.8)께서 코리안리서치센터의 연구활동에 참고하라고 하시면서 자료를 하나 국제우편으로 보내주셨다.

자료명은 ‘1978년 이민 현황과 해외 이민 정책’이고 자료의 주된 내용은 ①1978년 이전까지 한국인들의 해외 이주 현황과 ②이민에 대한 분석 및 평가, ③외국의 이민 정책, ④한국인들의 해외이주 정책 분석 및 평가 그리고 ⑤향후 해외이주 정책의 기본 방향 검토 등이고 말미에 관련 통계자료들이 첨부되어 있다.

이 자료는 차장관께서 1970년대 보건복지부 해외이주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직접 조사, 연구, 분석, 검토한 결과로써, 1962년 한국의 ‘해외이주법’이 제정ㆍ공포되어 한국인들의 해외 이주가 이루어진 지난 16년간(1962~1978)에 대한 종합 평가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를 통해서 한국의 초기 해외이주 정책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었다. 총 176쪽에 달하는 분석 내용과 통계자료들 가운데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간추려 보고자 한다.

먼저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 정책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1959년에 최초로 ‘해외이민위원회령’을 대통령령으로 공포했다.

그리고 외무부 장관의 자문기관으로 위원회를 설치하여, 인구 정책적, 고용 정책적, 경제적 및 국제협력 촉진 등의 관점에서 한국인들의 해외 이주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1961년 5.16혁명 후 해외 이주의 필요성이 강력히 주장되기 시작하여, 1961년 보사부에 이민과를 신설하고 1962년 「해외이주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 ‘해외이주법’에 따라 해외 이주 정책을 최초로 국가사업으로 채택하여 시행하게 되었다. 그 정책의 첫 번째 케이스가 바로 1962년에 한국을 떠난 91명의 브라질로의 계약 이민 송출이었다. 이렇게 시작되어 남미로 이주한 한국인은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총 714세대의 3,825명이었다.

이때 남미로 이주한 한국인들은 한국 정부 지원하에 정부의 계획에 따른 계약 노동 이민자들이었지만, 이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당초 계약된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인근 도시로 또는 제3국으로 이탈하여 그 후 남미 이민의 문제점을 낳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67년 이후 남미 계약 노동 이민은 사실상 거의 중단되었고 개별적인 이주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977년에는 직계가족 이외의 남미 이주는 전면 중단되었다.

1962년부터 1976년까지 남미로 간 한국인 총 이민자수는 브라질 9,847명, 아르헨티나 3,725명, 파라과이 12,940명, 볼리비아 1,377명으로 총 27,889이었고 이들 국가들에 불법체류 한국인이 총 약 8천여 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는 사이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약 8천여 명의 한국인이 독일의 광부로 떠났으며, 그 뒤를 이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만226명의 간호 인력이 독일에 파견되었다. 1965년에는 미국의 이민법이 개정되어, 1924년 이후 금지되었던 아시아인들에게도 미국 이민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에 따라 1970년대 들어서 미국으로의 한국인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가되었다. 그리하여 1962년부터 1978년까지 한국인 해외 이주자는 총 310,345명이 되었다. 이들이 외국에서 벌어서 한국으로 송금한 액수는,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매년 평균 8천6백만 달러였다. 이는 같은 기간동안 매년 평균 총수출액 31억3백만 달러의 2.8%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1978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미국으로의 한국인 이민으로 말미암아 한국 정부의 이민정책도 남미에서 북미, 특히 미국으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격적인 이민정책의 실시 이전에 ‘한국이 처해있는 현실 여건에서 과연 이민사업을 국가정책으로 밀고 나갈 것이냐’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것이 본 보고서의 작성 목적이었다.

본 보고서를 통해서 당시 한국인 해외 이주자의 외환 달러 소지 한도는 1976년 8월 이전에 북미(미국) 이주자는 1인당 200달러였으며 8월 이후에는 1,000달러로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남미로의 이주의 경우에는 1,2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증액되었지만 이 돈을 밑천으로 낯선 외국에서 자립하라고 한 것이 당시의 한국의 이민 정책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메리카 북중남미 대륙에 산재한 코리아타운들의 발전상을 보면 격세지감을 넘어 감개무량할 뿐이다.

<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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