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 단지: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애물)의 단지 무덤처럼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구는 물건이나 사람
애착(愛着):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덜어지지 아니한 사람, 동물, 물건에 대한 특별한 정서적 관계
아이구 갠 우리집 애물단지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누구나 아끼는 물건이나 사람이 생기면 처음엔 애착을 가지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흘러 감정이 변하거나 시들어지면 성가시고 귀찮은 애물단지가 되어 속을 썩인다. 버리기엔 찝찝하고 그냥 놔 두기엔 꼴 보기 싫고 처치 곤란한 것이 생각보다 많다. 이럴줄 알았다면 갖고 싶어하던 그에게 줄 것을 나에게 어울리지 않다는걸 알면서도 욕심내고 움켜쥔다.
얼마 전 아는 이의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어서 짐을 정리하게 되었다. 가져갈 건 갈아 입을 옷 몇 벌 뿐이고, 서류도 보호자가 보관하게 되니 모든 물건을 거의 한달간 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나이 든 부모와의 마지막 이별은 끝 없는 짐 정리와 쓰레기 봉투로 마무리를 하게된다. 친정 엄마는 수술 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셔서 짐을 정리하는데 트럭으로 가득 가득 버렸다. 몇년 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왜 엄마들 자개장농에는 하나같이 첫 월급으로 사 드린 빨간 내복과, 귀한 아들이 수학여행에서 사 온 유치한 싸구려 악세사리와 등 긁는 효자 손은 꼭 나올까? 낡은 앨범에는 창경원에서 찍은 부모님의 약혼 기념 흑백 사진, 발가벗은 돐 사진, 결혼 사진만 남기고 다 버리면서 잉잉 울면서 헤어지는 마무리를 대개는 며느리보다 딸들이 하게되야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아이들은 요즘엔 컴퓨터에 저장하지 누가 종이 사진으로 남기냐고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정리하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의 애물 단지는 뭘까? 어김없이 내게도 빨간 내복이 있고, 백년은 신을 양말, 설합 가득한 한글학교 선물용 학용품과 교과서, 각종 증명서와 서류를 담은 스크랩 앨범들, 내가 아끼는 책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이 모은 옛날 레코드판에선 종이가루가 풀풀 날리고 그런대로 돌아가는 턴 테이블도 있다.
그 옆에는 시아버지가 세탁소에서 쓰셨던 펌프질하는 청동 물통이 있다. 일하시는 모습은 뵌 적이 없지만 항상 초록 새마을 모자를 쓰고, 담배를 피우시며, 부지런히 아파트 통장을 하시던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애교 많은 서울 며느리가 팔장을 끼니까, 긴장해서 팔이 뻣뻣해졌지만 무조건 내편이어서 시어머니 한테도 시아버지 빽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부엌에는 내가 대학엘 들어가자 혼수품으로 미제 아줌마한데 주문한 백개가 넘는 온갖 유리 잔 셋트와 유리 냄비, 최신 스팀 다리미 덕에 아직도 나는 내 맘에 드는 유리 컵을 사 본적이 없고, 수없이 깼는데도 아직도 10개는 더 남아 있으니 진짜 옛날 미제 물건은 질기고 튼튼하다.
아이고 이게뭐야? 이게 아직도 있네요! 몇 십년 만에 남편이 새 지갑으로 바꾸었는데 그 안에 금박 카드가 있다. 결혼하고 나서 엄마가 심각하게 남편 사주에 금이 부족하다고 설합장 안에 은밀하고 소중하게 넣어 두라는 쇠 조각도 있고, 거금을 들인 금박 부적 카드는, 이름에 철자가 들어가 있고, 평소에는 과학적이고 이지적인 남편이지만, 지갑에 꼭 가지고 다니라는 엄명을 아직도 지키며 지니고있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 미신과 무속신앙이 섞인 이상한 묵주기도 한다고 비웃지만 나는 굳세게 기도하며 잘되면 다 내 덕이라고 흐뭇해한다. 부활에 나누어 주는 푸른 잎으로 만든 십자가와 성당 달력을 가족들에게 나누어야 우리를 지켜주는것 같고, 제사를 지내도 성당에서 축성받은 초를 써야 안심이 된다.
아끼고 나중에 쓰려다가 다른 누군가가 써 버리거나, 쓸모 없게 되거나, 애 태우고 쫄면서 아끼다가 똥이 돼 버려 가치를 잃는다. 그래 맞아! 애끼다 똥 된다. 나에게 온 것이면 무조건 써야겠다.
그리하여 언젠가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가 되고 처치곤란한 애물 단지가 되겠지만 아직은 어쩌지 못하고 함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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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