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우리는 왜 날아야 하는가’

2025-10-14 (화) 08:55:58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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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가족’
-아버지 송지호에서 쉬었다 가요. -시베리아는 멀다.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이상국의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중에서)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라는 새끼 기러기의 질문에 대해 아버지 기러기는 짧게 대답했다.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이 많단다.” 아버지 기러기가 새끼 기러기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정체성(identity)이다. 날개 짓을 멈추는 순간 기러기의 정체성은 소멸되고 만다는 가르침이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날개가 있어도 새는 날지 않고, 말은 달리지 않는다. 포도나무 뿌리처럼 박토와 같은 거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정체성의 힘이다. 아브라함, 모세, 바울이 자아 정체성이 분명할 때 거룩한 목표를 성취했다.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담대한 목표를 지녔던 에스더도 정체성이 강열했을 때 민족을 구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모세는 이중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했으므로 특별하다. 모세의 이중 정체성 은 애굽 왕가의 한 사람으로써 이스라엘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동족이 억울하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다 못해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이후로 모세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어느 날 모세는 하나님과 만났다.

거기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모세는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했다. 모세는 신을 벗고 무릎을 꿇었다. 마침내 모세는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일찍이 갈파했다. “정체성이 모호하면 인생 전채가 모호해진다. 특별히 청년기의 정체성은 인생을 좌우한다.”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은 자기 주관이 없는 카피(copy)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사람을 보면 영, 혼, 육을 하나로 묶는 통합 능력이 취약하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사는 것이 두려워지는 부정적인 삶의 무드를 갖는다.
정체성이 선명한 사람은 철저하게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산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끈다. 자연히 리더가 되는 것이다. 공동체 정체성의 확립은 더욱 중요하다.

공동체 정체성이 견고하면 그렇지 못한 공동체를 압도한다.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다. 자연히 선진국이 된다. 유대 민족을 보라. 그들은 2,500년 동안이나 나라 없는 디아스포라의 떠돌이 삶을 살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가장 탁월한 민족으로 생존했고 인류 역사를 이끄는 주인공이 되었다. 토라(Torah)와 탈무드에 입각한 삶의 목표가 유대 정체성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관객(구경꾼)이다. 둘째는 선수다. 셋째는 리더(멘토)다. 정체성이 약한 사람은 관객으로 살아간다.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은 운동장에서 달리는 선수로 살다가 마지막에는 리더의 삶을 살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한다.

정체성의 해답을 얻으려면 성경을 펼쳐라. 거기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라.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자아는 그것을 위치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투명하게 기초할 때만 진정한 자아이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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