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크라전 3년] ‘종전협상’에 중대 분수령… ‘상처뿐인 전쟁’ 종지부 찍을까

2025-02-18 (화) 04: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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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강력 드라이브에 종전협상 급물살…푸틴과 통화 후 총력 외교전

▶ ‘러 편향’ 행보에 초반부터 우크라·유럽 패싱 논란… ‘더티 딜’ 우려도
▶ ‘나토-영토수복-평화유지군’ 복잡한 퍼즐… ‘파병 북한군’ 테이블 오를듯

[우크라전 3년] ‘종전협상’에 중대 분수령… ‘상처뿐인 전쟁’ 종지부 찍을까

이달 14∼16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만난 미국·우크라이나 대표단[로이터]

오는 24일로 만 3년을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최대 변곡점을 맞았다.

취임 전부터 조기 종전을 공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식 등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전쟁 당사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각각 전화 통화를 하고 종전 협상을 즉각 시작하기로 합의했다면서 협상 국면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몰아치듯 종전 협상을 위한 총력 외교전에 나섰다.

지난 3년간 대규모 사상자와 물적 피해 속에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점을 감안하면 종전협상의 장이 마련된 것만 해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역시 기본적으로는 종전협상 자체에는 적극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 등 러시아에 편향된 태도를 보이면서 우크라 및 유럽 동맹국에 대한 패싱 논란이 빚어졌고, 이 때문에 종전 논의는 초반부터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강요당하는 '더티 딜'(dirty deal)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논란을 불식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물론, 유럽 주요국으로부터 공통분모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미러 첫 고위급 회담…우크라·유럽, '패싱'에 반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격적인 전화 통화를 한 뒤 종전 논의가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종전 협상을 즉시 시작하자는데 두 정상이 합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호탄을 이어받아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 등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참모들은 뮌헨안보회의(14~16일) 참석을 비롯해 총력 외교전에 나섰다.

밴스 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 독일 뮌헨에서 약 40분간 만나 종전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은 곧이어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와 종전 방안을 논의할 첫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다.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주축으로 한 양국 대표단은 고위급 협상팀을 신속히 꾸려 종전 논의를 이어가자는 데 합의했다. 협상 쟁점의 구체적 윤곽이 잡히진 않았지만 원만한 분위기 속에 첫 단추가 무난하게 채워졌다는 평가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수년간 제대로 운영되지 않던 대사관 인력 수를 복원하고 대사를 서로 파견하기로 합의하는 등 양자관계 회복에도 의지를 드러내면서 향후 고위급 협상팀이 우호적 분위기로 종전 논의에 속도를 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아마 이달 말 전에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면서 종전협상의 속도감을 높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먼저 전화를 하며 러시아 입장에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러시아 편향' 논란이 촉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통화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통화를 했지만 우크라이나 및 유럽 동맹국에 대한 '패싱' 논란이 빚어진 것이다.

18일 사우디에서의 장관급 회담도 우크라이나의 참여 없이 미·러 간 대화로만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사실 나는 그것이 전쟁 시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원인으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시도로 지목하기도 했다.

'동맹 패싱'과 '동맹 무시' 논란을 빚은 트럼프 행정부는 한편으로 자국 잇속 챙기기에 나선 모습이다.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돕는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지분 50%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국의 안보를 미국이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 광물협정 초안을 전했지만 미국이 이견을 보이면서 일단 결렬됐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주요국은 '패싱' 우려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뮌헨안보회의에서 "우리의 등 뒤에서 합의되거나 참여 없이 이뤄진 평화 협정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미·러 밀실협상을 강력 경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만나기 전에 먼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우크라이나와 EU가 참여하지 않는 협상은 신뢰할 수도, 성공적일 수도 없다"면서 "협상에 조건을 둔다면 이는 오로지 우크라이나만 결정할 수 있다. 협상 전 양보를 전제로 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경고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 세계의 독재주의자들은 이웃을 침공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경을 침범했을 때 처벌이 이뤄지는지, 실질적 억지력이 있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종전 결과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특히 미국이 대러 제재 해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루비오 장관은 러시아와의 회담 후 "(우크라이나)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의 양보가 필요하다"면서 "EU(유럽연합)도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기에 일정 시점에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황 따라 강경해진 러·우크라 협상 조건…트럼프 등장에 한층 복잡

유럽 국가들에겐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구상은 그동안 미국의 정책 일관성을 깨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엔 우크라이나가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종전 협상을 원칙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로 종전 논의는 더욱 복잡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고 우크라이나가 바라던 나토 가입은 불가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서방 진영 내부의 이해 조율부터 난관에 봉착한 모습이다.

바이든 정부 시절에는 종전 문제를 다룰 때 적어도 서방국 내부의 갈등은 현안이 아니었다. 제재를 통해 러시아를 고립시키면서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황을 우크라이나에 최대한 유리하게 이끈 뒤 협상 가능성을 살피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쟁 발발 1∼2년 시기에는 전황의 유불리가 종전 협상의 성사 여부를 가르는 최대 변수였다.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점령지인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와 중남부 헤르손 및 자포리자 일부 등을 아우른 영토를 가져가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면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림반도까지 포함한 영토 완전 수복과 러시아군 철수를 협상 조건으로 주장한다.

개전 초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 포기 등 러시아가 주장하는 일부 조건을 수용할 의향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탈환하고 러시아와 교전이 격화할수록 양측의 협상 조건은 더욱 강경해졌다.

러시아는 '젤렌스키와 협상 불가'를, 우크라이나는 '푸틴과 협상 불가'를 내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승인해 준다면 러시아 점령지를 완전히 수복하는 걸 포기한 채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식으로 조금 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 '나토·영토수복·미군 불가' 트럼프식 종전 가이드라인…복잡한 퍼즐

미국이 그리는 종전안의 밑그림은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등 핵심 참모들의 발언에서 어느정도 엿볼수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12∼13일 벨기에 브뤼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문 기간 유럽 각국 장관들 면전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및 영토수복, 평화유지군의 미군 참여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와 관련해 "나는 그것이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전 수준으로 영토를 탈환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라면서도 "일부는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는 트럼프식 '종전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사실상 선을 그은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확실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진정한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요구하면서도 러시아의 반대와 미국의 미온적 태도로 이것이 어려울 경우 미국이 보장하는 확실한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관점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평화유지군이 주목받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요구하는 '안전보장'은 평화유지군에 미군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미군이 파병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에 의한 패싱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협상의 선후관계와 유럽 동맹국의 협상 참여 문제도 쟁점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러시아와 협상을 개시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순위가 우크라이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지 않는 미국과 러시아간 종전협정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도 종전협상에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가 유럽 및 우크라이나의 종전 구상을 외면할 공산이 큰 마당에 트럼프 행정부의 종전안은 일종의 협상 가이드라인 구실을 할 개연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실질적으로 협상에서 배제된 채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당하는 '더티 딜'(dirty deal)이 이뤄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왜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러시아)에 모든 것을 내주는 것이냐"면서 "어떠한 미봉책도 '더티 딜'이 될 것"이라고비판했다.

종전안의 당부를 떠나 미·러 간 협상이 가속화하는 상황인 만큼 미국의 밑그림을 두고 이해 당사국끼리 줄다리기를 해야 할 상황이다.

유럽은 대책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17일 파리에서 프랑스와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덴마크 정상들이 나토 및 EU 지도부와 비공식 긴급회의를 연 것도 트럼프식 종전 협상에 대한 불안과 다급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 패싱 우려를 타개하려면 미·러가 눈을 돌리지 않게 만들 협상 카드를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유럽 각국은 공유하고 있다.

당장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보내 평화 합의 이행을 돕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최대 지원국이던 미국을 빼고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꾸리는 일의 현실성을 고려하면 유럽이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군이 참여하되 유럽의 부담을 늘린 평화유지군 구성안을 유럽 측이 대안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영토 문제도 단순하지 않다. 현재의 영토 점유 상황을 그대로 인정한 채 전쟁을 멈추자고 하면 우크라이나군이 일부를 점유 중인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이 쟁점이 된다.

크림반도는 물론 도네츠크·루한스크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에 친러 자치정부를 세운 러시아는 쿠르스크의 조건 없는 반환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점령지를 우크라이나에 돌려주는 일도 없을 거란 게 러시아의 견고한 입장이다.

◇ 파병 북한군 문제도 협상 테이블 오르나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에서 북한군 파병 종료 문제가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와 북한이 여전히 공식적으론 인정하지 않는 북한군 파병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 일본 등 각국 정보기관이 모두 기정사실로 여긴다.

우크라이나에 따르면 작년 10월 이후 북한군 특수부대 병력 1만1천여명이 러시아로 파병돼 전선에 투입됐고, 4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특히 러시아군에 배속된 북한군이 교전 중인 쿠르스크는 철군 및 영토 반환 협상 과정에서 제외될 수 없는 지역이다.

종전 협상이 가속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군의 쿠르스크 파병 종료 문제가 이 지역에 진입한 우크라이나군 철군 논의와 맞물려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북한군 문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별도의 대화 채널을 직·간접적으로 가동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다시 연락을 취해보겠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연락 시기나 내용 등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서 이를 접점으로 북미 간 의사 교환도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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